지금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이토록 당당하게 지킨 소설은 없었다.
출간 즉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켜
3일 만에 5천 부 매진, 재쇄 돌입!
아마존 YA 베스트셀러 1위!
★ 2019 UKLA 북 어워드 롱리스트 선정
난민은 불쌍하니까 도와야 한다고?? - 그런 거지 같은 동정은 당신의 호주머니에 넣어두어라. 적선 따윈 필요 없다.
난민은 사회적 약자다. 사회적 약자이니까 사회적 강자가 될 때까지 도와야 할까? 아니면 법무부에서 난민 인정을 받도록 도우면 할 일을 다 한 건가? 우리 사회의 많고 많은 사회적 약자를 제쳐두고 굳이 생면부지의 난민을 도와야 할 정당성은 어디 있을까?
이런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시민 정우성을 만나게 되었다.
‘시민 정우성’은 난민 문제에 관한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우리는 두 세계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난민을 나 몰라라 하는 세계’와 ‘난민 책임을 각국이 나눠서 지는 세계’다. 여기에 결정적 조건이 붙는다. 우리는 내가 어디서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로 이 선택을 한다. 즉, 우리는 내가 태어난 지역이 안전할지 분쟁 중일지 알 수 없다. 어떤 세계를 골라야 할까?”
솔직히 이러한 인식은 이 소설을 대여섯 번 읽으면서 절로 든 생각이기는 하다. 그러나 “Refugee Welcome Day of Welcome with Refugee”라는 난민 환영 행사에 참석했음에도 그 인식은 더 나아가지 않았다.
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정우성은 왜 배우 정우성이 아니라 시민 정우성이라고 했을까? 이 의문 속에 답이 있었다.
소위 난민이라는 사람은 한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항력적인 국가의 폭행에 의해서 난민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가능성이 제로보다 조금 높은 확률밖에 없는 보트에 타는 상황에 누가 자신을 노출하고 싶어 할까? 보트피플도 마찬가지일 게다.
“이 조건을 진지하게 따져본 사람들은 ‘난민 책임을 각국이 나눠서 지는 세계’를 고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분쟁지역에 태어났을 때의 고통이 너무나 클 것이기 때문에, 그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책임을 나눠서 지는 비용은 이 위험에 비하면 훨씬 사소해 보인다. 출생이라는 제비뽑기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면, 책임을 공유한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자연스럽다.”
난민 포르노를 넘어가다!
그렇다. 우리는 난민에 대해서 최소한 시민의 기본권은 보장해야 한다. 우리는 국민이기도 하지만 시민이기도 하다. 시민인 우리의 목숨을, 우리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오늘날의 난민들에게도 시민의 기본권은 보장해 주어야 한다. 배우 정우성은 배우이기도 하지만 시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배우 정우성’이라고 하지 않고 ‘시민 정우성’이라고 스스로 칭한 것이다.
이 소설이 여느 난민 소설과 다른 지점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독재 국가는 끊임없이 시민을 폭압하고 탄압한다. 시에라리온에서는 저항하는 시민들의 팔목을 자르고, 시리아에서는 하루아침에 정든 집이 눈앞에서 날아간다. 그래서 여느 난민 소설은 국가폭력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인류애에 호소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삶에 대한 난민 개인의 주체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좋다.
“한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위협이기에 ‘나’는 아프고 불쌍하다. 그래서 전 세계가 ‘나’를 도와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작가 엘르 파운틴은 난관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당당하게 지켜내는 모습으로 소설 속 주인공 시프를 그리고 있다. 어쩌면 이는 작가가 실제로 5년 동안 에티오피아의 도시와 오지를 돌아다니며 취재한 다음 소설을 집필했기에 형상화가 가능했던 난민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소설은 소위 말하는 ‘난민 포르노’를 넘어간다.
시프는 유럽에 당도한 뒤, 자신의 삶이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고 했다. 이 말에 힘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민 소년 시프가 유럽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앞으로는 아무런 고통과 슬픔 없이 행복한 삶을 보장받을까? 시프의 삶은 이제 소위 탄탄대로에 놓이게 될까? ‘어쩌면’이 아니고 ‘분명’ 아닐 것이다. 구조를 받더라도 난민의 삶이 위태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의 삶처럼.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은 난민이나 불쌍한 사람을 도울 만큼 당신 인생이 윤택하고 좋다고 생각하는가? 이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난민에게 당장 국경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시민의 목숨과 안위를 위해! 지금의 난민인 시민 예멘인을 위해!
■ 이란 소년 안토니오의 난민 불인정 결정을 뒤집는 데 일조한 오현록 교사의 추천사
여름내 기다려 온 난민의
슬픈 이름을 되찾아 줄 이야기
난민은 수치스러운 이름이다.
이슬람교도, 테러리스트, 범죄자, 거짓말쟁이, 세금 도둑. 온갖 혐오스러운 딱지가 붙어 공격 대상이 되는 이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웃을 향한 우리의 불온한 상상이 만들어낸 끔찍한 괴물.
유럽에서는 사진 한 장이 그런 불온한 상상을 흔들어 놓았다. 지중해 바닷가에 떠오른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체. 괴물로 여겼던, 그래서 두렵기만 했던 이웃의 정체는 빨간 윗도리와 푸른색 반바지, 감색 운동화를 신은 채 잠든 듯 해변에 엎드린 세 살짜리 소년이었다.
난민은 슬픈 이름이다.
아프리카 북동부의 작은 나라. 20년이 넘도록 비상사태가 유지되는 독재정권의 나라. 한번 군에 징집되면 5년이고 10년이고 제대를 기약할 수 없는 나라. 수용소를 탈출해 유럽으로 가기 위한 열네 살 소년의 여정은 멀고 험하다. 가족과 헤어지고, 친구를 사지에 남겨놓고, 다친 이를 인간 사냥꾼들 사이에 버려둔 채 앞으로 나가야 하는 걸음. 때론 고물 트럭에 몸을 싣고 때론 걷고 때론 보트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며 바다를 건너야 하는 필사의 탈출.
나는 지난여름 내내 아일란 쿠르디를 기다려 왔다. 얼음장 같은 우리 사회의 심성을 깨뜨릴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난민87》 한 소년의 이야기가 부디 기적의 물꼬를 트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하여 내가 몸담은 이 땅이 ‘슬픈 이름을 가진 이’들에게 진정으로 희망의 땅이 되길 바란다.
- 이란 난민 소년 안토니오에 대한 대법원의 난민 불인정 결정을 뒤집는 데 일조한 아주중학교 교사 오현록의 추천사다. 현재 오현록 교사는 키르기스스탄 소녀의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해 힘쓰고 있다.
“팽팽한 긴장감, 압도하는 공포,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비통함과 함께 희망이 소설 전반에 걸쳐 흐른다.” - The Guardian
“압도적인……실화에 기반하기에 생생하고 설득력 있고 공감되는……얼마나 심장이 쫄깃한지 이 소설은 우리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 The Sunday Times
■ 책 속으로
“신발 신어. 내일부터 입대다.”
“저는 아직 열네 살밖에 안 됐는데요.” 나도 모르게 뱉었다.
“신 신어.” 내 옆에 있던 군인이 반복했다.
그러더니 침대 발치에 놓인 가방으로 눈길을 돌렸다. 안을 들
여다보았다. 옷가지와 먹을거리, 물이 담긴 가방을.
“내일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이에요.” 엄마가 둘러댔다.
“학교에 여벌 옷을 가져간다고? 체스판도? 어디 다른 데로 가
려던 건 아니지?” 군인이 내게 물었다.
- 74쪽
“여기가 교도소입니까?” 비니가 물었다.
“친구 하는 것 좀 보고 배워라. 말을 줄여.” 네바이가 지청구를 놓았다.
일이 분이 지난 뒤, 요나스가 답했다. “너희는 중범죄자 강제수용소에 온 거야.”
“하지만 저희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요. 우리는 위험한 사람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니라고요.”
“그럼 네가 보기엔 우리는 중범죄자 같으냐?” 그 늙은 남자가 상자 안의 다른 남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 89쪽
“너희들은 온 지 이틀밖에 안 됐으니까 이해가 안 되지.” 밭은기침을 하더니 요나스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우리가 여기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조차 아무도 몰라. 정신은 또렷하지만 몸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어. 설령 우리 중의 하나가 수용소를 탈출을 시도한다 해도 몇백 미터도 못 걸어가 픽 쓰러질 거야.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진실을 모를 테지. 아무도.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교도관 새끼들을 빼고는.”
- 122쪽
“그런데 수용소를 빠져나갈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비니가 정말 궁금하다는 투로 물었다.
테스파이가 잠시 말을 멈췄다. “이렇게 정리하면 돼. 너희를 석방시켜줄 확률은 제로야. 그런데 너희가 수용소를 살아서 빠져 나갈 확률은 그것보다는 살짝 더 높아.”
- 145쪽
눈을 질끈 감은 채 비니가 외쳤다. “먼저 가!”
트럭이 거의 우리를 따라잡았다. 총탄이 발 위로 윙 하고 지나갔다.
“가. 도망가.” 비니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트럭이 다가오자 헤드라이트가 노란빛을 우리 주위에 비췄다.
나는 비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에 한가득 절망이 보였다. 내가 달리기 시작하자 멀쩡한 팔로 물병을 내게 집어 던졌다.
- 160쪽
누워 있는 동안 이런 간구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비니라면 어땠을까? 비니라면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내게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나는 사하라사막을 건너 나를 북쪽 해안에 있는 보트로 데려다줄 브로커를 만나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곳 언어도 못하고 지인이나 신뢰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이 문제가 오늘 밤 다시 내게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어둠을 멈추게 할 것이다.
- 191쪽
저녁을 다 먹고 나자, 여자가 말을 꺼냈다. “난민 캠프로 가면 안 돼.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납치하는 하이에나 같은 무리들이 있어. 큰 도시 외곽에 천막을 짓고 살지. 시장이나 버스 정류장을 돌아다니며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아다녀. 그들은 우리한테 도와줄 친구도, 친척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
“잡아서 집으로 돌려보내나요?” 내가 물었다.
“아니, 팔지.”
“사람을 판다고요?”
- 202쪽
“국경 보안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국경을 넘도록 도와줬다고?”
믿어야 할지 확신이 안 섰다.
“이상하게 들리는 거 알아. 돈이 많으면 국경을 지나 해안으로 바로 갈 수도 있어.”
고향에서는 돈이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았었다. 떠나고 나니 돈이 모든 일을 결정했다.
- 229쪽
문을 두드리는데 서늘함이 느껴졌다. 만약 삼촌이 돈을 안 보냈으면, 이 마을에 혼자 남아야 한다. 혼자 일자리를 구하고, 혼자 요리를 하고, 장을 보면서, 동시에 돈을 구해야 한다. 다시 떠날 기회를 얻기까지 일 년이 걸릴지, 오 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그나마 납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건 알마즈 가족과 떨어지는 거였다. 그들이 함께했기에 내가 여태 살 수 있었다. 엄마와 렘렘과 떨어진 상황에서 그 가족이 내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 오롯이 나 혼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 240쪽
메스핀이 나를 쳐다보며 당부했다. “우리 딸을 돌봐다오. 그게 이 순간부터 네가 할 일이야. 너라면 우리 딸의 생명을 지켜줄 거라 믿어. 이미 한 번 구했잖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메스핀이 믿어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섰다.
- 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