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라는 말 자체가 인간중심적이다?
콜레라, 사스, 조류 독감 같은 질병도 자연재해에 속한다?
자연재해는 대피 요령만 익히면 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11년의 글로벌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자연재해’였다. 2월 뉴질랜드 지진, 3월 일본 대지진, 넉 달간 계속된 태국 대홍수 등, 실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처절하게 느낀 한 해였다. 특히 일본에서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해 방사능 유출 사고가 일어나자 가까이 사는 우리들도 피폭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게다가 지난여름 서울에서는 104년 만의 폭우로 우면산에서 발생한 산사태가 마치 쓰나미처럼 마을을 덮치는 현장을 전 국민이 TV 화면으로 생생히 목격했다. 이처럼 압도적인 광경으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재해. 그런데 우리가 자연재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무얼까? 기껏해야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 태풍, 홍수 같은 것을 이른다는 것과 지진이 났을 때는 머리를 보호하며 책상 밑에 숨어야 한다는 간단한 대피 요령만 아는 수준이지 않나? 하지만 자연재해는 과학 상식이나 대피 요령만 익히면 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자연재해라는 말 자체가 인간중심적 사고를 내포한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판 구조론에 따르면 지구의 표면은 움직이는 판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지진이나 화산 폭발, 쓰나미 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날씨 때문에 태풍, 화재, 홍수, 기근 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자연은 46억 년 동안 지구를 뒤흔들어 왔고 이는 지구로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 ‘자연현상’이 인간 생활에 광범위한 해를 끼치면 인간은 이를 ‘자연재해’라 부르므로 자연재해는 정의부터 인간중심적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고 삶터를 파괴하고 깊은 정신적 상처까지 남기는 자연재해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고 미래에도 결코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세계의 인구가 늘고 있어서 자연재해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늘어나는 인구로 소비가 폭증하여 인간이 환경을 훼손함으로써 자연재해를 점점 부추기고 있다. 즉, 한층 난폭해진 자연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자연재해를 마냥 두려워하지 않고 그에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시 바삐 자연재해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자연재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인문학적으로 꿰어보는 자연재해 통합서!
‘자연 대 인간’으로 맞서는 것을 그만두고
‘자연과 인간’으로 조화롭게 살기 위해 노력할 때이다!
이 책은 자연재해를 둘러싼 체계적인 논의를 통해 결국 인문학적인 성찰을 유도한다.
먼저 자연재해가 무엇이며 각각의 자연재해가 왜 발생하는지 과학 원리를 들어 설명하고, 그 파괴력의 실상을 생생한 사진과 역사적인 예를 통해 전달한다. 특이점은 질병 또한 자연재해에 속한다고 짚어주는 것이다(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감염되는 콜레라처럼, 대규모로 유행하거나 다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질병은 자연재해로 간주된다). 2장에서는 재해가 닥쳤을 때, 즉 자연재해가 인간의 생명과 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자세히 살펴보고 피해자 구조 과정과 구호 조치 시 유의해야 할 점 등을 알아본다. 3장은 ‘재해 후 새 출발’로서, 인간이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피해를 복구해가는 모습과 재해로부터 교훈을 얻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악영향만 있는 줄 알았던 자연재해에 긍정적인 면도 있음을 언급해주어 흥미롭다. 4장에서는 재해를 예측하는 방법과 여러 가지 재해 대처 방안을 살펴본다. 5장에서는 인간이 불러오는 자연재해를 다룬다. 쓰레기를 양산하고 온실 가스를 대량 방출하고 위험한 질병을 조장하면서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인간의 무분별한 행태를 집중 조명한다. 6장에서는 미래의 자연재해 가능성을 점쳐 보고,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인간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이처럼 자연재해 자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넘어 자연재해를 둘러싼 인간 사회의 면면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이 책은, 능히 자연재해 통합서라 칭할 만하다. 이 책을 읽고 난 학생들 각자가 그린 ‘공존의 길’이 모이면, 앞으로 인간은 자연재해에 현명하게 대응하며 자연과 화합한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 책 속에서
인류는 자연재해를 대할 때 매우 인간중심적인 태도로 접근합니다. 즉 사람이 얼마나 죽거나 다쳤는지 하는 수치로 자연재해를 평가하지요. 뉴스의 표제를 장식하는 것도 사상자의 수입니다. 그러다 보니 도회지와 멀리 떨어진 오지에서 발생한 지진이나 화산 폭발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 현상이 재해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가가 관건이 됩니다. 특히 정부 입장에서는 경제적 비용이 얼마가 되느냐가 재해 규모를 평가하는 주요소가 되고 있어요. 21세기에 들어서도 세계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연재해의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편 이와 같은 인구 증가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도 커지면서 우리가 자연재해를 유발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어요.
-8~9쪽
인간과 자연이 충돌하는 문제로는 질병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질병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우리 모두는 병에 걸리기 마련이고 그중 상당수는 암처럼 회복 불가능한 병을 얻지요. 개인 차원의 질병은 비록 치명적일지라도 자연재해라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감염되는 콜레라의 유행은 자연재해입니다. 이처럼 대규모로 유행하거나 다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질병은 자연재해로 간주됩니다.
-27쪽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곧 비판에 직면하였다. 늑장 대응이었던 데다, 널리 예견된 재난이었건만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다. 사전에 전방위 비상계획이 수립되어 있었음에도 미국연방비상관리국(FEMA)은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중략...) 당국은 카트리나로 최소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복구 자금을 마련해야 했고, 수십만 이재민은 장기적인 고난을 감내해야 했다. 이와 같은 사고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계층은 항상 최하위 빈곤층임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자동차가 없는 사람들은 먼 길에 피난을 나설 수가 없었다. 버스 차비조차 없거나 운 좋게 차를 타고 빠져 나왔지만 정작 갈 곳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53쪽
재앙이 닥치면 사람들은 그 타격에 고통스러워하지만 결국 삶을 다시 세우고 나아가 재해로부터 교훈을 얻기까지 하지요. 자연재해를 겪고 난 뒤에도 전과 변함없는 사람은 없어요. 이런 변화를 통해 우리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해 갈 것입니다.
-57쪽
인간은 먹을거리라며 물고기를 샅샅이 포획하고 목재와 경작지를 얻는다며 숲을 파괴하면서 자연을 훼손합니다. 자연은 엄청난 재해를 일으키는 힘을 가졌지만, 동시에 미묘한 균형에 의존하는 섬세한 모습도 지닌답니다. 따라서 인간의 부주의한 행태로 자연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고,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재해를 피하려 애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앙이 일어나도록 부추기고 있는 셈이에요.
-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