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1장 박현수 기억하기
01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
02 어둠 속의 빛
03 김밥을 들고 뛰어갔던 날
04 도망치고 싶었지
05 죽기 보름 전에 찍은 가족사진
06 마지막 여행
07 수목장 편지
2장 가까이 있는 죽음
08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결정할 수 있다
09 같은 병을 겪는 사람들
10 거대한 상실감은 잘게 부순다
11 남편 어머니로부터 온 편지
12 나를 멀리 내다놓는다
13 죽음을 그린 그림책
3장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울게 한 부모님들
14 두 명의 엄마
15 고립된 섬, 우리 가족
16 30년 넘게 미싱을 돌린다는 건
17 정을 줘야 살 수 있어
18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사람, 아빠
4장 사랑, 결혼 그리고 꿈
19 오늘 남편의 컴퓨터를 켜고
20 가족이 된 우리
21 임신해서 다행이야
22 아메바피쉬의 꿈
23 가면소년 그림
5장 엄마가 되어가
24 아이가 사라진 날
25 내 불안이 아이에게 옮겨간다
26 고함쟁이 엄마
27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건 뭘까
28 체력이 곧 정신력
29 생애 첫 김치 담그기
6장 마흔 넘어 다시 꾸는 꿈
30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31 나는 몸이다
32 나를 걱정하시는 두 어머니
33 천막 밖으로
7장 남편의 수술부터 사별 후 1년까지 쓴 일기
맺는 말
울음을 삼키며 밤마다 써내려간 기록
10년의 연애 끝에 결혼해 아이를 낳은 지 1년. 남편이 신장암 3기 진단을 받는다. 항암치료를 거듭했지만 결국 남편은 네 살배기 아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뜬다. 그림을 그리는 동료이자 애인이며 가족이었던 사람을 잃고 저자는 이렇게 쓴다. “그에게 기댄 15년의 시간 동안 내 몸이 기울어졌다. 이제 그가 없으니 바로 서야 하는데, 자꾸 몸이 기울고 비틀거린다.” 이후 저자의 홀로서기 과정이 시작되는데, 그것은 남편과의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두 명의 엄마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날 버렸던 친엄마, 열 살 이후 날 길러준 새엄마, 그리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이야기는 유년기의 그늘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가 그곳을 돌아 나와 생에 빛이란 게 있다는 걸 일깨워준 남편에게로 이어진다. 그 어둠과 빛에 관한 글들이 모여 이 책이 되었다. 글쓰기는 남편의 죽음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해주었고, 현실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책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일기를 울지 않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유년의 기억을 딛고 일어서다
엄마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잘해낼 수 있을까? 남편이 떠나고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되자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친엄마는 곁을 떠났고, 새엄마가 그 자리를 채워 남매를 먹고 입혔지만 사랑은 잘 모르고 자랐다. 게다가 새엄마와의 연결점인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데다 술에만 점점 의존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 폭력이 엄마가 유일하게 정을 주던 강아지에게까지 이어지자, 새엄마는 아버지와 연을 끊고 얼마 안 있어 아버지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가족으로부터 안정감보다는 불안을 느낀 시간이 더 많았던 유년기. 그 불안이 나와 내 아이에게로 옮아가지 않도록 저자는 온 힘을 다한다. 그렇게 이어진 가족,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의 끝자락에 저자가 발견하는 것은 30년간 미싱을 돌려 자기를 먹여 살린 새엄마의 힘이다. 마음 놓고 응석부리거나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대학에까지 진학하도록 도운 사람도,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는 삶을 지지하는 사람도 결국은 새엄마였다. “나는 두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나는 엄마의 미싱으로 컸다”고 말하는 그는, 새엄마의 ‘미싱’이 가족을 지키는 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는 날것의 삶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직접 그림 작업을 더했다. 색을 쓰지 않고 오로지 잿빛 선으로 이뤄진 그의 그림은 소박하고 다정하다. 그림처럼 문장 또한 담백하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스스로를 속이지도 않는다. “나도 당신처럼 죽게 될 테니, 지금의 삶이 두렵지 않아.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아니 사실 두려워. 삶에 질질 끌려다니다 죽게 될까봐.” 이런 문장을 읽을 때면 살벌하게 따라붙는 삶의 공포가 내 어깨에도 턱하니 손을 올리는 것 같다. 그 두려움을 모른 척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려는 저자의 결연함은 글 전체에 깔려 있다. 직시하는 힘은 간병생활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스스로의 부끄러운 감정을 꿰뚫고, 미움과 원망을 꿰뚫고,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을 향한다. 그리고 “이젠 이해할 수 없는 일 중에 어떤 것은 그대로 놔둔다”라며 불가해한 것들은 흘려보낸다.
헤어짐 뒤에 다다른 풍경
어린 아들과 단둘이 남은 저자는 “감상적인 생각은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무너지는 마음을 여러 번 다잡는다. 하지만 그것이 곧 생계에만 집중하는 생활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미뤄두었던 꿈을 지금으로 가지고 온다. 그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도무지 버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고인에게 편지를 쓰며 저자는 고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미희야,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한 사람이야.” 15년간 곁에서 함께했던 사람이 마음속 깊이 새겨넣은 믿음과 사랑이다. 그 목소리에 힘입어 저자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홀로서기에 다다른다. 이 책의 미덕은 저자가 홀로서기에 다다랐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믿음을 발견했고, 그것을 짚고 일어섰다는 데 있다. 그는 “체력이 좋아야 아이와 뛸 수 있고 세상의 편견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다”며 아이와 김치를 만들어 먹고, 가족과 친구가 지어준 보약을 들이켜고 발걸음을 내딛는다. “즐거운 장례식을 위해서라도”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제는 “사람 사이에 섞여 흐름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