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하고 덧없는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음으로써
지중해적 반항의 길을 제시한 ‘프랑스의 니체’,
알베르 카뮈를 찾아가다
“삶에 대한 사랑 이외에 다른 할 말은 없어.
그러나 난 그걸 내 식으로 말하겠어.“
그는 비참하면서도 위대한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야말로 부조리에서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믿는다. - 최수철
◎ 도서 소개
카뮈의 영원한 고향 알제리에서부터
예술과 정치 활동의 정점을 찍은 파리를 거쳐
마지막 거치인 루르마랭까지,
부조리에서 반항을 거쳐 사랑에 이르는 문학 여정을 따라가다
20세기 부조리 문학의 금자탑 『이방인』, 폐허 문학의 걸작 『페스트』, 인간 내면의 진실을 집요하게 탐사한 『전락』 등의 작품으로 현대 프랑스 문학사의 빛나는 좌표가 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올해 타계 60주년을 맞이하는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 태어나 돌도 되기 전에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로서 활동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알제리 전쟁 속에서는 좌든 우든 인간을 전체화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함으로써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말하자면 그의 삶과 문학은, 인간사의 최대 비극이자 가장 부조리한 모습 중 하나인 전쟁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전후戰後 수많은 젊은 세대가 그의 작품들 저변에 깔려 있는 인간과 세계의 근원적인 부조리함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반사적 반응으로서의 반항에 깊이 공명했다. 특히 이 세계의 경계 바깥에서 걸어 들어온 것 같은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부조리를 대면한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방인』은 “건전지의 발명 못지않은 하나의 사회적 사건”(롤랑 바르트)으로 평가받으면서 세기의 문제작 반열에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공산당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노정한 폭력성에 대해 깊은 회의를 표명함으로써 사르트르를 비롯한 파리의 좌파 지식인들과 결별한 일은 경계적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대신 고대 지중해의 헬레니즘 전통에 기반한 한계, 절도, 균형, 중용을 내세운 ‘정오의 사상’(『반항하는 인간』에서 진정한 반항의 결론으로 내세우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현재성을 더욱더 인정받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지중해의 명징한 태양과 푸른 바다로부터 길어 올린 그 정오의 사상은 수사적 장식이 억제된 고전적이고 단순한 문체로 발현됨으로써(“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로 시작하는 『이방인』의 첫 구절로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 ‘짐승의 시간’으로부터 그를 건져 해독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소설 미학의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이 책의 저자 최수철은 카뮈의 인생 전반기 무대인 알제리와 후반기 무대인 프랑스 곳곳을 기행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연주해간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의식과 언어의 문제에 천착해오면서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일구어온 저자는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바 있다. 아울러 프랑스 문학 전공자로서 『이방인』을 직접 번역하면서 카뮈의 부조리 사상을 좀 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품 속 인물인 뫼르소와 강한 교감을 하는 가운데 텍스트를 그만의 방식으로 다시 쓰기도 했으니, 「나는 뫼르소다」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카뮈의 『페스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 자신의 장편소설인 『페스트』와 단편소설 「페스트에 걸린 남자」를 쓰는 등 카뮈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저자는 카뮈의 마지막 소설로서 사후 3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최초의 인간』을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을 연결하는 고리로 삼고서 그의 주요 작품과 공간을 따라간다. 그러고는 짧지만 강렬했던 카뮈의 여정을 한마디로 ‘부조리에서 반항을 거쳐 사랑으로 가는 도정’이라고 요약한다.
> 카뮈의 영원한 고향 알제리
카뮈를 찾아가는 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카뮈가 태어나 청년기까지 인생의 절반을 보낸 알제리이고, 다른 하나는 나머지 절반을 보낸 프랑스다. 저자는 먼저 알제의 빈민가인 벨쿠르를 찾아간다. 프랑스 이민자 3세대로서 가난한 포도주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카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알제 벨쿠르에서 성장기 대부분을 보낸다. 가족들 대부분은 문맹이었고, 외할머니는 폭군처럼 군림했으며, 남의 집 가정부 일을 하며 카뮈 형제를 먹여 살린 그의 어머니와 술통 제조자였던 외삼촌은 둘 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다가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질곡 같은 가난과 장애인 가족 속에서도 카뮈는 무상으로 제공되는 지중해의 태양과 바다에 탐닉함으로써 삶에 대한 그만의 감각과 내적 강인함을 키워나갔다. 다행스럽게도 그에게는 루이 제르맹이라는 좋은 스승이 있었다. 제르맹은 어린 카뮈의 재능을 눈여겨보고는 무료 개인 교습을 해주는 한편으로 완고한 외할머니를 설득함으로써 카뮈로 하여금 중고등 교육을 받게 했다. 이후 알제대학 철학과에 들어간 카뮈는 이번에는 결핵에 걸림으로써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했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가난과 질병은 그로 하여금 삶은 부조리하고 유한하다는 근원적인 인식에 가닿게 했다.
삶의 유한성과 존재의 하찮음과 운명을 존중하는 감각은, 알제리에 남아 있는 고대 유적지와 토착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고산 지대에서 더욱 깊어졌다. 청년 카뮈는 제밀라와 티파사 같은 고대 도시 유적지를 종종 찾아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명상에 잠기는가 하면, 신문기자로서 토착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이 사는 카빌리 지역을 취재함으로써 그 속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적 영생이나 초월보다는, 삶의 유한함과 하찮음을 명징하게 직시하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이 순간에 충실할 것을 요청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티파사의 카뮈 문학비에 새겨져 있는 그의 말, 즉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낌 없이 사랑할 권리다”라는 구절도 유한한 생에 대한 찬미를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카뮈가 말하는 ‘진정한 반항’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서 길어 올린 것이었다. 말하자면 알제리는 그에게 대지에 충실한 세계관을 심어준 것이었다.
> 부정과 긍정의 종합으로서 사랑으로 나아간 미완의 여정
이제 저자의 발걸음은 프랑스로 향한다. 카뮈는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프랑스 남부에 있는 파늘리에에서 요양하는 가운데 전쟁에 휘말린 참담한 시대적 상황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전쟁에 대한 우의적 증언이자 삶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힘에 대항하는 보편적 저항 문학으로서의 성격을 띤 『페스트』가 탄생했다. 또한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부조리 사상을 담은 철학적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를 세상에 내놓았으며, 리옹을 오가며 레지스탕스로도 활동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파리로 간 그는 전시의 한복판에서 항독 지하 레지스탕스의 기관지 《콩바》를 이끌어가던 주역으로서,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이자 심지어 배우로서, 갈리마르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서, 실존주의적 철학자로서, 노벨문학상이라는 최고의 세속적 영예를 맛보았으면서도 당대 좌파 지식인들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려야 했던 아웃사이더 작가로서 곡절 많은 세월을 보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마침내 말 많고 번잡한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루르마랭에 정착한 그는, 프랑스인이자 알제리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자로서 자신의 뿌리 찾기를 핵심 주제로 한 방대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인간』이 바로 그것으로, 카뮈는 이 작품을 두고 그 자신의 『전쟁과 평화』라 일컫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 1월 4일, 상스에서 파리로 가는 7번 국도 위에서 그가 타고 있던 자동차는 길가의 나무를 들이받고는 멈추어 선다. 그 충격으로 카뮈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와 함께 부정에서 긍정으로, 다시 부정과 긍정의 종합으로 사랑으로 나아가려던 그의 여정도 갑자기 찾아온 이른 죽음과 함께 속절없이 중단되고 말았다.
비록 살아생전에는 프랑스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향 사람들인 알제리인들로부터도 숱한 공격을 받으며 배척당했지만, 극한 대립과 폭력의 세기에 이념보다는 개별적 인간 하나하나를 중시하고 관용과 절도의 길을 제시한 그의 고독한 행보는 우리 시대에도 강력한 실천적 지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 책 속에서
그는 소설을 통해 공연히 말만 화려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감정과 사실의 내밀한 경험, 그리고 인간이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는 감동적인 진실을 번역하는 데 몰두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프롤로그」 중
학교는 그에게 도피처이자, 책과 더불어 지적 욕구를 마음껏 채우며 새로운 세계로 날아오를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집에서는 낯선 세계에 속하는 이방인이 되어 점점 침묵한다. 그런가 하면 학교에서도 점차 이방인이 되어간다. 유복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기 집의 가난을 더욱 뚜렷하게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01 「카뮈의 영원한 고향」 중
도시의 가난과 자연의 풍요로움으로부터 삶의 모순을 인식하는 동안, 점차 그에게서 역전이 일어난다. 가난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자 자연의 풍요가 더 절실하고도 계시적으로 다가오면서 그의 육체적 활력과 정신의 강인함을 북돋우어준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명확히 인식할 때 얻을 수 있는 힘이다. 이방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그의 속에서 자리 잡는다.
- 01 「카뮈의 영원한 고향」 중
요컨대 가난과 병은 그에게 특별한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계기를 통해 연극과 글쓰기에 새롭게 눈을 뜬다. 병에 걸려 스포츠의 ‘단순한 기쁨’을, 늘 병과 죽음 앞에 직면한 인간적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연대감을, 몸의 감각과 움직임에 대한 관능적 열정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 그는 자신이 상실한 것을 거의 그대로 연극 활동에서 되찾는다. 그런가 하면 가난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일, 인간의 역사, 인간의 조건에 대비되는 태양이라는 자연의 힘, 더 영원하고 더 본질적인 존재 혹은 관념을 인식한다. 그럼으로써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인간적 행위로서의 창조 행위에 눈을 뜬다. 말하자면 연극과 글쓰기는 카뮈가 평생 동안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며 죽음에 반항하는 의미를 가진 두 가지 행위였다.
- 01 「카뮈의 영원한 고향」 중
나는 이곳의 베르베르인이 아랍인과 다르며, 베르베르인이 곧 무어인이며 카빌리인임을 안다. 그들에게서는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과묵함을 넘어서는 어떤 비장감, 현상을 초월하는 깊고 비극적인 눈길, 현대화된 도시 생활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듯한 초월적인 인상이다. 과학 정신으로 무장한 서구인들이 저들을 짓밟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다. 과학이 신비를 두려워하며 말살하려 드는 형국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뮈에게서 저 베르베르인, 카빌리인의 풍모가 풍겨 나온다. 그 공통된 풍모가 카뮈에게 그토록 중요한 지중해적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들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느낀다. 카뮈 또한 카빌리에서 비참만을 보지 않았다. 고대의 찬란함, 운명에 대한 존중과 지상의 덧없는 삶에 대한 완전한 수용의 미덕을 보았다.
- 02 「유한한 생에 대한 찬가」 중
제밀라는 그에게 죽음을 준비하게 하는 장소, 죽음에 대한 명상을 통해 명료한 정신으로 죽음과 대면하는 장소다. “내 명징한 의식을 극한에까지 밀고 나가서 나의 모든 아낌없는 질투와 공포와 더불어 나의 종말을 응시하고 싶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비로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이 펼쳐지는 ‘자신의 왕국’을 발견하는 것이다.
- 02 「유한한 생에 대한 찬가」 중
하지만 절대와 영원을 연상시키는 그런 형상이야말로 카뮈가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윤곽이 물렁거리고 당장이라도 발효와 부패로 이어질 듯한 상태, 스스로 더할 나위 없이 명증하고 자명한 태양, 그 태양의 가혹한 빛줄기를 받아 모든 것이 노골적으로 노출되고 짓뭉개져 소멸되기 직전의 상태, 그것이야말로 카뮈가 ‘절망적으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억압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자연의 힘과 더불어 모든 것이 순간순간 변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들 하나하나가 그 힘에 대항하여 변하고 뭉개지는 것들을 가지고 어렵게 하나의 형태를 빚어내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다가 시간이 다하면 다만 헛되이 스러져가는 것, 지상에서 영원한 것과 경건한 것은 단지 우리 속의 영원함과 경건함에 대한 의식일 뿐이라는 것, 그러한 명징한 의식을 통해 삶의 본질을 투시하며 순간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을 가지고 영원한 윤곽이나 형태에 도전하는 작업이 곧 예술이라는 것, 그리스의 정신을 가진 지중해인이자 예술가로서의 카뮈를 우리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 03 「창조와 반항으로서의 글쓰기」 중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선 달리 어쩔 수 없는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비로소 자유가 있다. 그러려면 죽음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여 속속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 03 「창조와 반항으로서의 글쓰기」 중
카뮈가 보기에 파리 같은 대도시는 비인간적이다. 자연의 생명력으로부터 멀어져서 ‘인간’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도시의 시스템이 인간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문명과 자연 사이의 절제와 절도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는 솔직하지 못한 파리 사람들에 대하여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 04 「『이방인』의 탄생」 중
그렇다면 뫼르소가 지니고 있는 내적 진실은 무엇인가. 그는 앞날에 대해 희망도 절망도 가지지 않는다. 인간은 곧 죽는다. 이 때문에 카뮈는 『작가수첩 1』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시간이 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행복해질 시간이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가 되려 하는 것은 죽음에서 비껴나기 위한 헛된 짓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행복을 차압당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명철한 의식을 가지고서 삶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삶의 매 순간을 최대한으로 살 수 있게 된다.
- 04 「『이방인』의 탄생」 중
『작가수첩 2』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조리에 걸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부조리로부터 발을 빼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카뮈 식으로 말하면, 부조리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명확히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또한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다. 그렇다면 부조리는 우리 삶의 장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부다. 따라서 그러한 부조리와 제대로 대면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때 부조리는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이자 사유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 05 「부정을 넘어 긍정으로」 중
무엇보다도 카뮈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량 학살을 일으키게 된 유럽인들의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의 근원을 파악하고자 시도한다. 200여 년 전 근대 계몽주의가 태동하면서 자립적 주체가 된 인간들은 개인적, 이기적 자아실현의 갈망 때문에 ‘형이상학적 반항’을 하거나, 또는 역사적인 합법성을 실천하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역사적 반항’을 했다. 이렇듯 제약받지 않는 주체 내지 역사의 요구가 정당화됨에 따라 각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제약이 없어지고, 철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한 거창한 이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범죄가 늘었다. 그리하여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행된, 20세기 역사의 비극적 상징인 대량 학살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반항과 역사적 반항에는 사드부터 초현실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로베스피에르부터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작가를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긍정적 반항, 본래적 반항, 올바른 반항이있다. 이것은 만인 평등 의식에서 성숙한, 자유와 정의에 봉사하는 반항이다.
- 06 「티파사의 돌기둥에 기대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