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르쳐줬던 알파벳을 또 헤매고 있는 아이에게 한숨이 날 때도 있다. 분명 어제는 곧잘 하던 간단한 산수 문제에도 오늘은 실수 연발이라 오뉴월에 감기도 아니건만 이마에 열이 오를 때도 있다. 참고 또 참았다고 감히 자부하면서 곧잘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다.
“대체 몇 번을 했는데... 어째서 아직도 모르는 거야! 집중을 안 하니 그렇잖아.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잔뜩 언짢은 기색의 엄마 앞에서 당연히 아이도 주눅이 든다. 내 어린 시절 공부시간이 즐겁지 않았듯, 으레 이 아이와의 공부시간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이리라 당연시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그랬다.
“엄마! 엄마도 그랬을 거잖아. 엄마도 몰랐었을 거야. 엄마도 어렸을 때는...”
응당 이런 항변도 한 번쯤은 나오리라 예상했었다.
“뭘 몰랐다고? 나도 덧셈 몰랐을 거라고? 나도 알파벳 매일 하고도 잊었을 거라고?”
유치하고 부끄럽게도 나는 너처럼 돌아서면 잊어버리진 않았다고... 난 꽤나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고 자랑을 할 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들여다보다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아니. 엄마도 처음에는 몰랐을 거라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어떻게 집중해야 하는지... 혹은 대체 집중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날 나는 아주 오래 곰곰이 생각했었다. 대체 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했던 공부시간이 어째서 고역이었는지를... 다 지난 일이라 별로 유쾌하지 않았던 그 시간을 부러 돌이켜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그랬다. 나는 작정하고 그 시간을 다시 기억의 서랍에서 끄집어내 들여다보았다.
그 시간이 고역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내게 애초에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집중을 해야 하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그리고 나는 그렇게 아주 중요한 단계를 생략한 공부시간을 내 딸과 또 나누고 있었다. 아니... 내 딸에게 그 고문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마치 너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마땅하다는 듯 당하는 이가 이유도 모를 그 고문을...
“얘, 너 1학년이지? 화장 촌스러운 거 하고는... 딱 티 나. 그냥 화장을 하지 마세요.”
유독 꾸미고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던 대학 때 알던 아이 하나는 1학년생을 놀리는 재미가 학교에 다니는 낙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옆에서 보며 그녀가 1학년일 때는 세상 그 누구보다 촌스러웠다는 것을 떠올리곤 했다.
“어머, 그런 것도 모르세요? 미국에서는 그러면 큰일 나요.”
본인도 미국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니면서 특별히 불친절한 그 사람들은 고작 이민 온 지 몇 년이 채 못 된 그들이다.
우리는 살면서 불친절한 나비를 많이 만난다. 그리고 그 불친절한 나비들은 나비라고 다 성숙하거나 다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그들이다. 그런 그들을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실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는 중이었다. 그것도 바로 내 사랑하는 딸에게...
아이를 키우며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사실 우리는 모두 누구나 못생긴 애벌레였다...”
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비라고 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른들이다. 못생긴 애벌레를 아름다운 나비로 잘 키우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 그저 두고 보면 애벌레는 세월을 먹고 나비가 되겠지만 아름다운 나비로 잘 자랄지는 모를 일이다.
우리보다 불편해진 환경에서, 더 복잡해진 사회에서, 더욱 치열해진 경쟁속에 자라야 하는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강하게 키우고자 고민하면 쓴 글, 그리고, 다중언어, 국제 가정에서 크는 아이들을 더 잘 인도하고자 꼼꼼히 기록한 글을 공유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