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아버지의 눈길
# 글 아는 사람 구실 자못 어렵네-매천 황현
1 하루
1910년 8월 3일(양력 9월 6일)
망국의 소식
비통한 형제
2 이틀
1910년 8월 4일(양력 9월 7일)
『매천야록』을 쓰다
큰 산 아래 너른 들로
호양학교를 세우다
그리운 벗들
어느 길을 가야 하는가
3 사흘
1910년 8월 5일(양력 9월 8일)
오늘은 참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마지막 문장
#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없구나-고운 최치원
1 산사의 봄
가야산 해인사
길상탑 아래에서
2 당나라에서
십 년 안에 급제하지 못하면
먼지 자욱한 갈림길에서
3 찻가마 안에서 끓는 물처럼
현준 큰스님
찻물 끓는 소리
새 세상을 바라다
4 천하의 문장
황소에게 고한다
동귀자, 서화자
5 돌아온 신라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노니
낡은 것은 새로운 것에게
난세에 무슨 일을 더 이룰 것인가
원문
참고 자료
1. ‘생의 한 갈피에서 포착한 한 인물의 삶과 그의 시대
―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소설 읽는 재미와 지적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성인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 교양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무언가를 쏘아보는 황현의 초상화처럼 강력한 잔상을 남기는 역사의 이미지 혹은 장면들이 있다.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은 인상적인 이미지나 사건, 혹은 특정 시기에 주목하여 한 인물의 삶과 그가 살았던 사회와 역사를 포착한 역사 교양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한 권에 한 주제로 한 명에서 서너 명의 인물을 다루면서, 밀도 있는 중편으로 생의 한 지점을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지 않는 한에서 소설적 요소를 가미했는데, 이는 인물이 가진 독특하고도 인간적인 매력을 되살리면서 작가의 눈으로 당대 사회를 해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내용 이해를 도우면서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 텍스트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그림도 삽입했다. 소설 읽는 재미와 한국사를 배우는 지적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성인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서로서 손색이 없는 시리즈이다.
2. 『책만 보는 바보』 『시인 동주』 안소영 작가 5년 만의 신작
‘글 아는 자의 구실’을 다했던 두 문장가의 최후를 그리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 『마지막 문장』은 『책만 보는 바보』 『시인 동주』 등으로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이는” 작업을 섬세하고도 정교하게 성취해 낸 안소영 작가가 집필했다. 촘촘한 고증을 바탕으로 시대와 인물에 대한 얼개를 짠 후 비로소 상상력을 덧대어 한 인물의 삶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일은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한 작업이다.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중단편 길이의 글에 인물의 전체 실루엣을 스케치하면서 시대상을 보여주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에서 과감히 벗어나 원고지 200~400매에 인물과 시대를 집중력 있게 서술하면서 보다 극적인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18세기 지식인 이덕무에서 일제 강점기 시인 윤동주까지, 안소영 작가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문체로 되살아난 인물들은 시대의 한계와 아픔에 고뇌하고 번민했던 맑고 고운 청년들이 많았다. 『마지막 문장』은 작가가 『시인 동주』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세상에 태어나 글을 배우고 익힌 자의 구실을 다하려 애썼지만 시대와 신분의 한계에 부딪혔던 최치원과 황현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들의 울분과 분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새 시대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을 지지하면서 저무는 시대의 마지막을 온몸으로 기록한 두 지식인의 최후에 주목한다.
3. 천여 년 전의 문장가 최치원이 해인사에서 보낸 말년,
백여 년 전의 구례 선비 황현의 마지막 삼 일
십대 때 당나라의 과거에 급제한 명실상부한 천재이자 「황소에게 고하는 격문[檄黃巢書]」으로 당대를 호령한 문장가 최치원(崔致遠, 857~908 이후)은 홀연히 종적을 감춘 후 가야산의 신선이 되었다는 설화로 유명하다. 황현(黃玹, 양력 1856. 1. 18~1910. 9. 7)은 구한말의 귀중한 역사자료인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쓴 저자이자 한일병탄이라는 치욕스러운 역사 앞에 자결로 의기를 보여준 조선 시대 유학자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문장』은 이처럼 독자들에게 친숙한 역사 인물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어, 마흔여덟 살의 최치원이 가야산 해인사에서 보낸 (사실상 마지막 집필 작업이었던 「법장화상전」을 마무리한) 904년 봄,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한 후 자결하기 전 황현의 마지막 삼 일을 소설로 표현했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병치레를 하며 고승들의 전기를 집필한 최치원은 자신처럼 병든 신라에 연연한다. 하지만 새 세상을 세우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 희랑(希朗)과 관혜(觀惠) 같은 젊은 스님들을 지지하고, 궁예, 왕건, 견훤 같은 젊은 정치 세력들이 가져올 미래를 희망한다. 구한말 선비 황현에게는 “시골집에서 상투 틀고 앉아 경전과 시문을 들여다본 고루한 한학자”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그는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며 망국으로 치달았던 을사년(1905)의 오욕을 겪은 뒤, 평생 해 온 경전 공부를 접고 젊은이들에게 신학문을 배워 나라의 힘을 기를 것을 권유한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구체적이고 쓰임새 있는 학문’을 가르치는 ‘호양학교(壺陽學校)’를 설립하는 등 그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 선각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작가는 이렇듯 사실의 뼈대를 탄탄히 세우는 과정에서 두 인물에 대한 편견을 걷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낸다.
「법장화상전」을 찬술한 갑자년(904) 봄날 이후 최치원은 수창군(대구 수성과 달성 지역) 팔각등누각의 기문 외에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이후 최치원의 문장도, 그 자신도 더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근 이십 년간 『매천야록』을 써 오며 역사를 충실히 기록했고 후진 양성에도 힘썼던 황현은, 1910년 양력 9월 7일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다. 작가는 평생 글을 갈고닦은 두 문장가의 최후를 서술하면서, 역사를 증언하기 위한 이들의 마지막 선택을 그린다. 희망은 후배 세대에게 넘겨주고 앞선 세대로서의 부끄러움을 잃지 않았던 두 지식인이 남긴 최후의 문장은 ‘붓이 아닌 몸으로 쓴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