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지난밤을 조금이라도
2부 둥지 지키기
3부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
옮긴이의 말 | 슬픔의 삼면화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
소설가 한강 추천!
딜런 토머스 상│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젊은 작가상 (2016)
〈선데이 타임스〉 21세기 최고의 책 Top 100│〈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슬픔 #상실 #위로 #애도 #가족 #사랑 #희망 #초현실 #데뷔작 #문학상수상작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들의 비통한 나날이 거대한 까마귀의 깃털들을 달고 전진한다. 혹은 길게 우회해 우리 등뒤로 문득 도착해 있다.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이다.” _한강(소설가)
불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슬픔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영국의 소설가 맥스 포터는 말한다. 그것은 날개 달린 까마귀의 형상으로 온다고.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자와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두 아이가 상실의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 애도의 과정을 주관하는 것은 현명한 친척 어른이나 살가운 친구처럼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난데없이 집안으로 들이닥친 한 마리 말하는 까마귀다. 때로는 짓궂고 때로는 다정한, 거대하고 다재다능하며 사려 깊은 이 새는 극심한 상실의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 사람을 다시 삶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지워지지 않는 죽음의 흔적을 절망의 근거가 아닌 굳건한 사랑의 기억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작가 맥스 포터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책과 각별하고 끈끈한 관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점 매니저로 근무하며 ‘올해의 젊은 북셀러 상’을 받기도 했고, 그후에는 영국의 그란타 출판사에서 최근까지 편집자로 일했다. 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영국의 그란타 출판사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펴낸 곳으로, 맥스 포터는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을 당시 편집자로서 인연을 맺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쓴 원고를 모아 2015년 첫 소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을 발표한 그는 딜런 토머스 상(2016)과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젊은 작가상(2016)을 받았으며, 가디언 퍼스트 북 어워드와 골드스미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또한 2019년 발표한 두번째 소설 『래니Lanny』로 부커상 후보와 고든 번 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맥스 포터의 삶에서 언제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문학에 대한 사랑과 어린 시절에 겪은 개인적인 상실의 기억이 결합해 탄생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첫 이야기가 슬픔과 그것의 극복에 대한 관습적인 서사가 아니라, 등장인물이 겪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정한 심리, 특히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까마귀의 목소리를 비정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아주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되기를 원했다. 결과적으로 소설이자, 시(詩)이자, 우화이자, 슬픔에 대한 에세이이기도 한 이 책은 분절된 문장과 독특한 텍스트 배열 등 산문과 운문을 오가는 독창적인 스타일과 문체로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동시에 소설의 세계를 확장한다. 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시인이자 번역가 황유원은 기이하게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문장의 맛이 한국 독자들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고심해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매만졌다. 여백이 많은 텍스트인데다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짧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야심과 글자 사이 빈 공간에 스민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죽음의 여파에 허물어진 어느 가족의 둥지 속으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든다.
아름다울 만큼 무질서한 슬픔의 진원에서
검은 날개를 펼쳐 추락하는 삶을 붙잡기 위해.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아빠’ ‘아이들’ ‘까마귀’, 이렇게 세 화자가 돌아가면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풍경에 대한,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해두려는 듯, 소설은 남자의 아내가 사망한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죽음은 말 그대로 ‘부재’로서만 존재한다. 이야기의 막이 오르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내의 흔적이 가득한 집에서 충격에 빠진 채 서성이는 남자가 있다. 하루종일 수많은 조문객의 과장된 위로와 불편한 친절에 시달리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녹초가 되어버린 그는 엄마를 잃은 어린 두 아들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제 아빠는 예전에 우리가 알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고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용감한 아이들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지만, 자신들이 알던 세상이 그렇게 한순간에 소리 없이 무너져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리고 연약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과 그럼에도 가차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포위 공격 속에서 무너져가는 이들 앞에 아주 특별한 구원자가 나타난다. 검고 커다란 날개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무장한 까마귀 한 마리. 인간들이란 슬픔에 빠져 있을 때를 제외하면 별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칭 “감상적인 새”인 이 까마귀는 남자에게 “네가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유모이자 상담사이자 보호자이자 친구로서, 가족들 곁에 끈질기게 머무른다. 남자와 아이들이 아내, 혹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수시로 불러내 그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거나 그것을 형벌삼아 스스로를 고문할 때마다, 까마귀는 절망의 문 앞을 가로막은 채 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엄하게 훈계해 돌려보낸다. 아빠와 아이들은 삐걱대고 비틀대면서도 까마귀의 지도를 따라 점차 다시 삶의 궤도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까마귀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한다.
문학으로 쓰는 진심어린 러브레터,
에밀리 디킨슨과 테드 휴스에게 바치는 헌사
이 작품은 작가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두 명의 시인에게 바치는 일종의 문학적 오마주이자 헌사이기도 하다. 그중 한 명은 19세기의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고, 다른 한 명은 20세기의 영국 시인 테드 휴스다. 먼저 소설의 제목인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희망은 날개 달린 것(“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으로 시작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에서 ‘희망’을 ‘슬픔’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소설의 앞에는 사랑에 대해 노래한 에밀리 디킨슨의 또다른 시가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점은 ‘사랑’을 포함해 몇몇 핵심 시어들이 손으로 그린 듯한 가로선과 함께 ‘까마귀’로 장난스럽게 고쳐 쓰여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런 재치 있는 ‘다시 쓰기’는 새롭고 독창적인 문학을 지향하면서도 과거의 걸작에 대해 존경과 애정을 품은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해 이야기의 입구에 걸어놓은 환영의 메시지처럼 읽힌다.
또한 소설의 중심 캐릭터이자 이 작품에서 가장 혁신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까마귀’는 테드 휴스의 시집 『까마귀』(1970)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맥스 포터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이십대 때 그 작품에 굉장히 심취했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따라서 작가가 서점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구상해온 그의 첫 작품이 휴스의 문학적 영향력 아래 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설 속에서 까마귀의 보살핌을 받게 된 남자가 하필 『까마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논하는 연구서를 집필중인 테드 휴스 연구가라는 사실 역시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이 휴스의 『까마귀』 초판을 펴냈던 영국 출판사 ‘Faber & Faber’에서 출간되었다는 것 또한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디테일이다.) 테드 휴스의 대표작이자 문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어둡고 강렬한 시집 속에서 까마귀는 전설과 신화 속의 존재이자 생명력과 혼돈의 상징이며, 신과도 대적하는 ‘트릭스터(trickster)’로서 등장한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뒤,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진 이 비범한 생명체는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상징성을 입고 다시 한번 날아오른다.
절망의 그늘이 아닌 삶의 볕 아래에서
슬픔을 끌어안는 법
남자 이제 난 슬퍼하지 않게 되는 건가?
새 아니, 천만의 말씀. 넌 그저 절망하지 않게 된 것뿐이야. 슬픔은 네가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고, 슬퍼하는 데 까마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지.
남자 나도 동의해. 그건 늘 변하지.
새 슬픔 말이야?
남자 응.
새 그건 모든 것이야. 그것은 자아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것이고 아름다울 만큼 무질서하지.
_본문 149∼150쪽
기나긴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온 한 남자와 두 소년은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삶의 바다를 바라보며, 슬픔은 소중한 것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감정이 아니라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로소 이들은 과거를 지워버리려 노력하는 대신 과거를 끌어안은 미래를 상상한다. 상실의 고통뿐 아니라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 역시 그 과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제목을 빌려온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슬픔’의 자리에 있던 원래의 시어는 ‘희망’이다. 언뜻 슬픔과 희망은 아주 다른 개념처럼 느껴지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면 희망과 슬픔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리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슬퍼하는 일은 절망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희망을 위한 행위라고, 죽음이 깃들어 있기에 삶이 빛나듯 슬픔은 인간의 영혼을 밝히는 존엄한 아름다움이라고, 소설은 까마귀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이제 희망의 자리에 슬픔을 넣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는다 해도 그것은 더이상 절망으로 읽히지 않을 것이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 / 영혼 속에 내려앉아 /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네 / 끝나지 않는 노래를……”
▶ 추천의 말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감정으로 충만하지만 결코 감상적이지 않은 소설. 맥스 포터는 정적인 비애의 감정을 고수하지 않고, 분노와 광기와 비속함과 유머를 오가며, 화자와 목소리의 음량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야기를 직조해낸다. 이것은 제목이 가리키는 ‘날개 달린 것’처럼 살아 숨쉬는 이야기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책과 문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작품.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한 가족의 슬픔과 그들에게 괴로움과 구원을 동시에 선사하는 별난 생명체를 숭고하고 처절하게 그려낸다. 결코 단순하거나 성글지 않은 치밀한 이야기이며, 그 자체로 어떤 모자람도 없다. 이 날개 달린 책은 정말로 탁월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당신이 올해 만날 가장 감동적이고 독창적인 데뷔작. 칠흑처럼 어두운 유머와 강렬한 감정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갑작스러운 상실의 타격을 생생한 절박함을 담아 그려낸다. 슬픔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극복해낸다. 경이롭고 지극히 문학적이며 종내는 희망적인 작품. NPR
맥스 포터의 이 이상한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영역을 맴돌며 세상이 가하는 고통에 대해, 죽은 이의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남겨진 우리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견디며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매력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이야기한다. 우아하고 독창적이며 글의 리듬 또한 완벽하다. 슬픔을 다루는 문학, 나아가 문학 전체에 기여하는 작품. 커커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한 기도서. 맥스 포터는 슬픔에 동반되는 모든 감정의 형태를 표현해낸다. 예측할 수 없게 재기발랄하며 풍자와 모순, 검은 날개가 달린 유머로 가득한 소설. 월 스트리트 저널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두 장의 하드커버 사이에 사로잡힌 아주 작고 섬세한 이야기의 새떼 같다. 죽음과 죽음을 위로하는 것들?슬픔에 잠긴 사랑과 예술?에 대한 이 감동적인 소설은 일견 페이지 위로 날아올랐다 내려앉는 연약한 텍스트와 대화와 시(詩)의 파편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다보면 이 작품이 조직된 방식에는 실로 활기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극도의 압축을 통해 지적이고 예술적인 도전을 감행함으로써, 맥스 포터는 사랑과 상실을 글로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깊은 사색을 이야기에 담아냈다. 가디언
언어유희와 추상적 관념들, 분방한 상상력을 관통하는 예리한 세부 묘사가 소설 속 가족의 상실을 보다 생생하게, 그들의 슬픔을 보다 실감나게 만든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이라는 공허를 명백한 실체를 가진 생명체로 바꾸어놓았다. 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
슬픔의 파괴력에 대해 처절하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고찰하는 작품. 인물들은 심오하고 간명한 문장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소설에 담긴 강렬한 감정들은 사랑과 상실과 애도를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포터는 선명하게 시적이고 어둡게 아름다운 데뷔작을 통해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씨름하는 아버지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정말로 뛰어난 작품이다. 독자들은 포터 특유의 문학적 스타일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북리스트
기이하고 눈부신 데뷔작. 작품의 구조와 스타일을 구축하는 상상력 넘치고 우아한 접근 방식과 세밀한 감각이 이야기에 신선함을 부여한다. 직설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이 책은 ‘하나의 관념으로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의문을 동시에 제기한다. 시카고 트리뷴
슬픔과 치유에 대한 강렬하고 초현실적인 소설이자 시(詩).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 책 속에서
그녀가 떠남으로써 빚어진 가장 주요한 결과는 아마 내가 영영 이렇게 뒷바라지를 하는 사람, 상투적인 감사의 말을 주고받으며 이렇게 목록을 작성하는 상인 같은 사람, 엄마 없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기계처럼 일상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라고 느꼈다. 슬픔이 사차원적으로, 추상적으로, 어렴풋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추웠다. 본문 14쪽
난 정말로 신경이 쓰여. 인간들이란 슬픔에 빠져 있을 때를 빼면 별 재미가 없거든. 건강, 재난, 기근, 악행, 찬란한 것들 또는 정상적인 것들은 별로 내 흥미를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지만 엄마 없는 아이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엄마 없는 아이들은 순수한 까마귀야. 나처럼 감상적인 새에게 그것은 숙성되고 진하고 그윽해서, 마치 새 둥지처럼 약탈하기에 아주 그만이야. 본문 29∼30쪽
우리집은 말 그대로 ‘더이상 아내의 것이 아닌’ 항목들로 채워진 백과사전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충격의 연속이자, 우리집과 질병이 휩쓸고 지나간 집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 그녀는 죽느라 바쁘지 않았고, 간병의 흔적 같은 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사느라 바빴고, 그러고는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본문 36쪽
케이크 믹스가 부풀고 구워지면서 케이크 틀 가장자리를 꽉 채워가듯,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삶으로 점점 모양을 잡아가던 결혼 초기에, 우리가, 그러니까 아내와 내가 이렇게 행복하다면, 분명 뭔가가 잘못되고 말 거라며 두려워하던 게 생각난다. 본문 61쪽
나의 이 그리움이란 어쩌면 이리도 물리적인 것인지. 아내가 너무 그리워서, 그 그리움은 금으로 만든 거대한 왕자, 콘서트홀, 천 그루의 나무, 호수, 구천 대의 버스, 백만 대의 차, 이천만 마리의 새들 그 이상이다. 도시 전체가 아내에 대한 나의 그리움이다. 본문 77쪽
하나의 관념으로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건 멍청한 사람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슬픔이 장기 프로젝트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르길 거부한다. 우리가 떠안은 이 고통은 그 속도를 늦추거나 올리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본문 144쪽
아빠는 늘 표류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맥주 같은 금빛 저녁노을 속에서 몸을 돌렸다가 여전히 남아 있는 온기를 느끼고 놀라는 사람처럼. 본문 153쪽
만일 까마귀가 아빠에게 뭔가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속된 표현을 쓰자면: 신념. 본문 153∼154쪽
아이들의 목소리는 바로 그들 어머니의 삶과 노래였다.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아름답다. 이 모든 것이. 본문 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