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시작하며 _ 한국사가 친숙해지는 책
Chapter 1 삶의 궤적 그리고 전통 : 우리 조상은 어떻게 살았을까?
여인은 왜 새벽에 서낭당 주변을 서성였을까? _ 결혼 개념 변천사|허례허식을 전통이라 해서야 쓰나 _ 혼수와 예단의 근원|
공무원 채용 시험은 과거 시험에서 유래했다? _ 과거 시험에 얽힌 이야기|
고려 시대에 입시 학원 광풍이 불었다 _ 첫 사설 학원의 역사|수백 년을 버틴 세계 유산 _ 팔만대장경 생존기|
외교라고 말하지 마시오! _ 여성의 아픈 역사, 공녀|서울이 홀라당 타 버릴 뻔한 적이 있다 _ 최초의 소방 조직 이야기|
빨간 배추김치는 19세기 이전에 볼 수 없었다 _ 조선 시대의 음식 문화|
우리 역사에 인육까지 먹던 참사가 있었다 _ 최악의 기근 사태|그 옛날의 폭탄주는 강했다 _ 주당들의 음주 문화|
천민이 ‘백성’이 될 수 없는 이유 _ 성씨와 족보 이야기|마을 이름에 슬픈 역사가 담겼다 _ 서울 지명의 유래|
조선 시대에 UFO가 나타났다? _ 미확인 비행 물체의 실록 기록|
최초의 서양 병원은 제중원이 아니다 _ 제중원 논란과 제생의원 스토리|
명성 황후가 한국에 화교를 불러들였다? _ 화교의 역사|현모양처는 일제가 만들어 낸 허상이었다 _ 순성여학교 이야기|
사진만 보고 결혼하던 때가 있었다 _ ‘사진결혼’의 아픈 역사
Chapter 2 역사를 만든 사람들, 역사가 만든 사람들 : 한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들
일본에서 문화의 꽃을 피운 백제 왕자 _ 아좌 태자 이야기|두 번 왕후를 지낸 여성이 고구려에 있었다 _ 왕후 우씨 이야기|
신라 성골은 왜 진골에게 왕위를 넘겨야 했을까? _ 선덕 여왕 탄생 비화|
근친혼과 권력 쟁탈전의 오묘한 공존 _ 천추 태후의 삶|세종은 백성에게 물어 세금 제도를 결정했다 _ 세계 최초의 여론 조사|
변절자인가, 현실주의자인가? _ 신숙주를 위한 변명|인수 대비의 두 고모는 공녀였다 _ 가문을 살린 한씨 자매 이야기|
조선 시대 팜므파탈, 어우동의 비극 _ 여성과 성 이야기|신분 장벽 극복한 조선 시대 오뚝이 _ 반석평 이야기|
측은지심이 만들어 낸 기적 _ 홍순언 이야기|서양보다 먼저 민주주의를 논하다! _ 민주주의 이념의 태동|
내가 택한 조국, 내가 버린 조국! _ 김충선과 항왜|한국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서양인은 누구일까? _ 서양인의 조선 상륙 역사|
술과의 전쟁에 모든 것을 건 왕이 있었다? _ 영조와 금주령|푸른 눈의 한글학자·독립운동가가 있었다 _ 호머 헐버트 이야기|
무당이 나라를 살린다고? _ 명성 황후와 고종에 관한 불편한 진실|400 대 1 총격전은 실화였다 _ 김상옥 이야기
Chapter 3 정치와 사상을 뒤집어 보다 : 딱딱한 정치 이야기를 B급으로 이해하기
우리 민족의 뿌리는 어디에? _ 『환단고기』 실체 논쟁|탐라국 역사가 고조선보다 길다? _ 한반도 최남단·최북단의 역사|
영남·호남 갈등 역사가 천 년을 넘는다고? _ 지역감정의 유래|고려 전기에 6개월짜리 무신 정권이 있었다 _ 미니 무신정변|
왜 그토록 중국을 섬겼을까? _ 조공과 책봉을 둘러싼 논란|죽어서라도 왕이 되면 기쁠까? _ 추존 왕의 이야기|
과거 시험 안 봐도 정승 될 수 있었다 _ 정승이 되는 또 다른 길|
국방부 장관보다 후궁이 상사인 까닭 _ 조선 시대의 관직 이야기|
임진왜란 때 용병 부대가 활약했다? _ 조선 시대의 흑인 용병 이야기|실학, 진짜 정체를 알고 싶다 _ 실학을 둘러싼 논쟁|
흥선 대원군은 원래 쇄국주의자가 아니었다? _ 대원군 개혁의 본질|
정경유착은 근대 이전부터 있었다? _ 보부상에 대한 또 하나의 시각|
단발령 때 누가 가장 먼저 머리를 깎았을까? _ 단발에 관한 추억|
악질 친일 경찰이 갑자기 만주로 떠난 까닭은? _ 3·1 운동 비사|1920년대, 한국은 허무주의자들의 세상이었다? _ 허무당 선언|
38선 이전에 39선이 생길 뻔했다? _ 분단선에 얽힌 이야기|
새로 얻는 것보다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_ 독도 논쟁에서 배우는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