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밀양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1부 [심층 인터뷰]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어제와 오늘_김영희
1차 인터뷰
2차 인터뷰
2부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담론장
1장 학술: 연구 영역
밀양 송전탑 사건을 둘러싼 정당성 담론의 전개_심형준·김시연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여성 연대’와 ‘밀양 할매’라는 표상_김영희
2장 미디어: 사회운동 영역
밀양 송전탑 13년,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다_이계삼
공론화와 밀양 할매들_고준길
내 소원은 ‘안전한 나라’ 물려주고 눈을 감는 것_이보학
농사꾼의 상식으로 신고리 5, 6호기는 백지화되어야 한다_김영자
3부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목소리
1장 주민들의 말(밀양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
1. 2012년 7월 주민 세 명에 대한 한전의 10억 손배소 당시 재판장에게 주민들이 보낸 탄원서
2. 2014년 5월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 이재묵씨와 김영자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3. 2015년 9월 주민 19인 1심 판결 전 주민들의 탄원서
4. 2017년 6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주민들의 편지
5. 재판정에 섰던 주민들의 법정 최후진술
2장 연대자의 말
죽음의 송전선으로 삶을 밝힐 순 없습니다_수유너머R
살라,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_홍은전
얼룩덜룩한 삶에 적응하기_김시연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을 보고_이선혜
여럿이 함께 꾸는 꿈_강영숙
오늘, 살러 들어간다_김금일
옥희 언니의 밥상에 감동받다_김은숙
농사와 글쓰기 공부 ‘흙이랑 수다 떨기’ 시작하다_이창숙
행정대집행을 기억하는 2주기 즈음에_이창숙
바느질 할 사람, 요기 요기 붙어라_엄미옥
그곳에 ‘밀양 할매’의 자리는 없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 김영희가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나섰던 ‘밀양 할매’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은 농성 천막들이 모두 철거되고 대부분의 건설 예정지에 송전탑이 들어선 2014년 겨울,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었다. 모두가 싸움에서 졌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하지만 그가 밀양 할매들을 만나서 맨 처음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다. 밀양 할매들 누구에게도 아직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밀양 할매들은 이 싸움이 탈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이들은 에너지 정책의 위험을 알리고 송전탑이 뽑히는 그날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또한 이들의 곁에는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는 활동가들과 송전탑이 들어선 후에도 여전히 지속적으로 왕래하며 탈핵의 길을 함께 걷는 타지의 연대자들이 있었다. 긴 시간 함께 산속 천막농성장을 지켜온 ‘이웃’이자 ‘가족’이 된 이들이다.
그러나 공권력의 개입으로 무너졌던 현장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밀양 할매’의 싸움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노후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행사에 참여한 대통령이 ‘밀양 할매’의 손을 잡고 ‘탈원전’의 뜻을 되새긴 행사 직후 ‘공론화위원회’를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2017년 탈원전이 정책 기조였던 후보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밀양 할매’들은 드디어 이 긴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471명의 시민들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숙의 과정 끝에 나온 시민 권고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밀양 할매들은 이 담론장에서 탈원전 논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신고리 원전 5, 6호기의 건설 재개 결정안이 최종 제안되었고, 이 과정에서 밀양 할매들은 경험한 적 없는 사회적 고립감과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밀양 할매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전문가도, 당사자도, 시민으로도 호명되지 못했다.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끈질기게 ‘탈원전’을 이야기하고 그 부단한 싸움의 결과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탈원전’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던, 그리하여 ‘공론화위원회’의 구성을 가능하게 했던 ‘밀양 할매’는 이 공론장에서 도대체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일까? ‘밀양 할매’는 왜 ‘시민’을 위한 ‘담론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밀양 할매’가 이 ‘담론장’ 안에서 ‘시민’으로 호명받을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서울과 도시로 보내기 위해 살고 있는 마을 한복판에 초고압 송전탑이 지나가게 된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밀양 할매’는 원자력발전의 문제가 누군가의 재산과 건강이 아닌 우리 모두의 건강과 미래가 걸린 문제라고 말한다. 그들은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를 ‘그들’이 아닌 ‘나’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한국사회 에너지 개발 정책의 불의한 타협과 불평등을 고발했다. 그들은 누군가가 그린 것처럼 ‘무지렁이 시골 노인’, 정치 세력의 ‘꼭두각시’가 아닌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로 자신을 천명했다. “이 책은 사회적 전망을 담아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공론장 내부에 자기 위치를 가질 수 없었던 ‘밀양 할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밀양 할매’는 밀양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노인이나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밀양에 거주하고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여성 노인들이 주축이기는 하되, 그들과 함께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 활동하며 성장해온 연대자와 활동가를 아우르는 말로 쓰고자 한다.”
귀 기울여 듣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이 책은 ‘산만’하다. 들어야 할 여러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데 그 목표를 두고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적 장소로 가정되었던 공론화위원회를 포함해 다양한 사회적 담론장에서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들을 듣고자 했다. 또한 목소리란 원래 이질적이고 다성적이다. ‘하나의 목소리’를 위해, ‘대의’라는 명분 아래 묻혀야 했던 목소리는 언제나 다른 목소리에 우선순위를 빼앗긴 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의 목소리라도, 아니 소리가 작고 그 힘이 미약한 목소리라면 더욱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한번 묻힌 목소리가 다시 드러나는 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의 장면들을 운동의 한 역사로만 흘려보내지 않고 학술적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인 연구자들의 말, 활동가와 연대자, 운동의 주도 세력인 마을 주민들의 말을 함께 들었다. 이들 각각의 말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연결된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 서로 이질적인 성격의 글들이지만 한자리에 모아 제시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활동가들과의 집단 인터뷰를 정리한 글이다. 2012년 이후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해온 활동가들을 두 차례 인터뷰하고 당시 녹음한 녹취 자료를 정리하면서 인터뷰를 기획하고 실행한 연구자가 관찰하고 성찰한 내용을 별도로 기술했다. 2부는 사회적 담론장에 그 모습을 드러냈던 목소리들을 갈무리한 글로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두 편의 학술논문과 세 편의 언론매체 기고문을 실었다. 3부는 주민들과 연대자들의 목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듣기 위해 다양한 성격의 글들을 모아 엮었다. 2012년 재판 과정에서 주민들이 제출한 탄원서와 2014년 박근혜 전(前)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에 주민들이 적은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는 대통령 취임 직후에 주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를 한껏 담아 적은 글로, 한글 편지를 쓰기 어려운 분들까지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을 모아 적은 편지글이다.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핵심 주체 가운데 하나인 연대자들의 글도 주민들의 글과 함께 수록했다.
“누군가의 말은 그 말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자리를 통해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 말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없을 때 안으로 움츠러든 말들은 사람들의 내면에 더 깊은 상처를 만들어낸다. 어렵게 세상으로 나온 말을 귀하디 귀한 마음으로 담아 찬찬히 되새겨보기 위해 이 책은 기획되었다. 지나가다 설핏 듣거나 딴짓을 하며 얼렁뚱땅 흘려듣는 말이 아니라 제대로 자리 잡고 앉아 마주보며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말이기에 이 책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자’고 독자들을 꼬드긴다. 이 설득이 어느 정도 성공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마음만큼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