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 어머니에게 받은 무명 한 필
01꽃이 피지 않는 풀이 있으리
곰취잎이 곰 발바닥 같아도
무꽃
줄딸기
또 꽃이 피어버렸네, 쑥갓
폭죽 터지듯이, 부추꽃
두 번 꽃피는 민들레
오이꽃은 여름 상보에 수놓으면 시원하다
메우고 비우고, 한련
02오색 실로 꽃 놀이
두 손 모은 듯, 연잎과 연꽃
땡글땡글 남천 열매
마음대로 칼라
흙담 밑에 핀 접시꽃
아네모네
당귀를 은빛으로
매화보다 일찍 피는 꽃, 히말라야 앵초
자운영 꽃 무리
서늘하고 달콤한 매화 향기
03옛 수에 담긴 마음
은방울꽃을 디자인했네
베갯모의 소국 송이
동백, 그 단순한 맛
나팔꽃은 여름 꽃
목단 두 가지
동자가 연꽃을 들고서
장수를 기원하며, 실국화
홍매와 새
04 느긋하고 편안한 꽃
옛날 생각나는 패랭이
쪽빛 푸른 달개비꽃
단풍과 영지
단풍잎에 봄볕이 비추면
맑디맑은 철원 꽃창포
애물단지 괭이밥
산동백은 생강 향기가 난다
05 곁에 두고 오래 보다
어머나, 여우꼬리
뒷산 망개나무, 잘 생겼네
장독대 옆 맨드라미
부러진 남천 가지 주워다
보고 있으면 시원한 맥문동
한라 용담, 즐겁다
한 나무에 여러 색 꽃피네, 목화 ?
바느질법과 도안
오색 실로 꽃 놀이하고
수놓기는 분주하고도 무료한 우리 삶의 수행이자 예술 활동이다. 스님은 수 작업을 오색 실 놀이, 천 조각 안에서 마음껏 내 꽃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꽃술에 파랑 실을 쓰거나 알록달록 여러 색으로 매화를 본 즐거운 마음을 담기도 하는 등 주어진 색실 번호를 따르기보다 자기 나름대로 색을 골라 보면 수작업이 더욱 창의적이고 즐겁다.
꽃 수 보며 마음 공부하다
정위 스님의 수에는 자연의 생동감이 깃들어 있다. 하늘거리는 꽃잎, 줄기 휘어진 모습, 각기 다른 초록 잎의 변주를 보고 있으면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색실을 골라 그저 면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자연의 모습을 살핀 수행자의 마음이 무명 위에 드러난다. 마땅한 색이 없어 이리저리 맞추다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야기, 잎을 메울지 비울지, 어떤 색을 고를지 하며 허송세월한 에피소드, 바람 결에 꺾어진 가지 주워온 이야기 등 스님의 수 이야기를 읽으며 잔잔한 위로와 삶의 지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