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에 올라야 비로소 죽을 수 있다. 그가 죽음은, 그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가 아니라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49대의 채찍질에 살이 뜯겨나가고 피가 엉겼다. 한낮의 태양은 이글거리고 골고타에는 벌써 독수리가 난다. 그를 따랐던 제자들은 하나씩 불러본다. 자신을 위해 죽겠다는 베드로를 마지막으로 예수는 쓰러진다. 이때 무리를 헤치고 뛰쳐나와 예수를 부둥켜안은 두 여인이 있었다. 마리아와 베로니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강했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기적 같은 존재니까 마땅했다. 베로니카는 예수 옷자락만 잡으면 병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구원받았고 세상에 홀로 섰다. 예수의 피 묻은 얼굴을 닦아줬고 그 손수건에 예수의 얼굴이 남았다. 성서는 남성중심적이다. 아니 인류의 역사가 그렇다. 보편적이라는 뜻을 가진 가톨릭에서 여성은 기본적으로 사제가 될 수 없다. 21세기를 살면서 성서가 기록된 1세기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예수를 두고 다 도망친 겁쟁이 남자들로 인해서 말이다.
2017년 겨울
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