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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노래
젊은 파르크에게
말의 해변에서
언어들
언어 대장간에서
발화
나의 시
내일은 바다
시인 1
시인 2
로런에게 1
로런에게 2
에드거 앨런 포에게 바치는 나날
말
2
추억
산책
장미원
전경(前景)
숲
교정(校庭)에서
이태원에서
인천
노스탤지어
몽마르트르
제네바 고비(叩扉)
베른
리듬
와세다 부근
풍경(風景)
눈 고장에 와서
여록(旅錄)
히말라야
3
오늘 아침
산하엽
바다 1
바다 2
순간
우주
탐조(探鳥)
역(力)
휴(休)
길목에서
고독
축제
만남 1
만남 2
만남 3
비인칭
길
이(?)
죄
4
봄
가을
가을날
추일서정
9월
겨울
눈 1
눈 2
눈 3
눈 4
너에게
새와 눈
파주
산역(山役)
거의 블루
별
너의 얼굴
밤이 간다
어느 밤
풍경들
말은 번역되지 않아
나는 너를 만나려 한다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임선기 시인의 네번째 시집 『거의 블루』가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항구에 내리는 겨울 소식』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시집이다. 등단 12년 만에 선보인 첫 시집 『호주머니 속의 시』에서 세련된 감각과 진실성이 돋보이는 ‘나무의 시’를 쓰며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의 나무’를 조성했던(최현식) 임선기. 그 나무가 드리운 그림자가 운치 있게 감돌던 두번째 시집 『꽃과 꽃이 흔들린다』의 지극한 섬세함과 고요함, 절제된 단순함과 순수함은 외려 세상의 만상이 놓인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류신). 등단 20주년을 맞아 펴낸 『항구에 내리는 겨울 소식』에서는 절제된 언어와 풍부한 여백의 시편으로 ‘흰 바탕’ 혹은 투명한 비움에 대한 시적 탐구를 보여주었다(강경석). 총 4부 72편으로 구성된 『거의 블루』에서 임선기 시인의 화두라 할 만한 호흡과 여백에 대한 탐구는 더 깊고 넓어졌다. 편안하고 평이하게 읽히지만 수수께끼와도 같은 압축된 시어와 그에 담긴 철학적 깊이는 자꾸만 읽어 지나온 뒤편을 돌아보게 한다. 처음에는 글을 읽고 단어를 읽지만 두 번 읽을 때엔 구두점이 보이고 그 점이 맺고 푸는 여백이 보인다. 그의 시를 읽으며 독자들은 그가 마련한 무한한 여백에 감도는 바람을, 그것이 불어온 저 너머를 꿈꾸게 될 것만 같다.
꿈인 줄 알고 누워 있으니
여름인 줄 알고 강아지가 온다
강아지인 줄 알고 눈을 뜨니
눈인 줄 알고 발을 밟는다
풀인가 하여 저녁을 보니
서둘러 꽃인가 하여 드러눕는다.
아득한 시간이어서 주워서
독서해보니 지나가버렸다...
―「이미지」 전문
프랑스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임선기 시인은 말이 합성되고 파생될 때 전광석화처럼 일어나는 의미의 술래잡기를 계속하며 말의 해변에서 쓸려나가는 모래 같은 언어들을 줍는다. 리듬과 호흡을 화두로 삼고 발전시켜온 그이기에 이번 시집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구두점의 의미 역시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각기 다른 모양과 높낮이를 가진 구두점들은 마치 음표처럼 작동해 시를 읽는 호흡에 개입하고 의미의 자리를 만드는 시어가 된다.
시인은 어제가 오늘을 비추고 있는(「이태원에서」) 이번 시집에서 물의 마을을 찾아가며 거처가 없는 꿈을, 나무에서 나무까지, 나무에서 배경까지 이어지는 투명보다 더 투명한 투명을 이야기한다(「베른」). 검은 적도 푸른 적도 없는 밤의 그곳에서는 고요도 네 어깨에 묻어 있고(「풍경(風景)」) 흰 꽃잎은 눈물로 투명해진다(「산하엽」). 따라갈 수 없어서 보낼 수도 없는 밤은 “수북하다/홀로”(「밤이 간다」).
표지 그림은 하이경 작가의 <을왕리>를 사용했다. “우리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슬퍼하지 말자”(「을왕리 詩」 『항구에 내리는 겨울 소식』) 했던 그이기에 더 특별한 만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