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문학자인 저자가 옛글 속에 담긴 우리 고전 음악과 음악가에 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인문 교양서이다. 옛 음악들이 만들어진 배경과 주제, 양식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꼼꼼히 정리하고, 역사 속에 묻힌 우수한 예술가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 보여준다. 또, 그 이야기 속에서는 풍류를 즐기며 여유롭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생생한 삶과 문화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 고전 음악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더라도 흥미를 가지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에세이 형식으로 주제를 풀어 나간다.
예를 들어 ‘그녀와 놀고 싶은 봄날의 꿈, 춘면곡’을 보면, 좋아하는 연예인을 기다리느라 건물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당시로서는 연예인에 해당하는 기생을 기다리느라 앳된 서생이 도포를 멋지게 차려입고 부모 몰래 술집 앞에서 서성대며 지은 노래인 <춘면곡>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한시나 옛 노래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한 저자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노래나 연주, 음악가에 대해 의미 깊고 즐거운 탐색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조상들의 음악 문화와 미의식, 그리고 생활 속의 문화 향유 현장이 어떤가를 알리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데다,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준다는 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옛 노래와 함께하는 ‘맑은 즐거움’
옛글을 보면 우리 선인들이 즐거워 한 것은 대체로 돈 안 들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느긋하게 독서하는 것, 단정히 앉아 고요히 말없이 있는 것, 산수 자연 속을 한가로이 거니는 것, 평상에 앉아 거문고를 타는 것,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것, 꽃을 가꾸는 것, 차를 마시는 것 등이다. 저자는 이런 즐거움을 옛글에 빗대어 ‘맑은 즐거움’이라고 말하는데, 다산 정약용의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깊은 산중에 살면서 삼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으며, 맑은 샘물에 가서 발을 씻고 노송에 기대어 시가를 읊으며, 마루 위에는 이름난 거문고와 오래 묵은 석경, 바둑 한 판, 책 한 다락을 갖추어 두고, 마루 앞에는 백학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화초와 나무, 그리고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돋우는 약초들을 심으며, 때로는 산의 승려나 선인들과 서로 왕래하고 돌아다니며 즐겨서, 세월이 오가는 것을 모르고 조야(朝野)의 치란(治亂)을 듣지 않는 것, 이것을 두고 ‘청복(淸福)’이라 한다.’
옛사람들의 즐거움은 이처럼 ‘맑은 것’이었다. 이는 그 대상이 맑기 때문이 아니라,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의 마음 자체가 맑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리라.
그리고 옛사람들의 즐거움에는 노래와 거문고가 있었다. 연암 박지원에게도 음악과 함께한 그리운 추억이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이렇다. 선배인 담헌과 둘이서 처음 본 악기 줄을 고르고 음을 조절하고 있는데, 달빛을 타고 기약도 없이 또 다른 선배가 찾아왔고, 그 선배는 흥이 도도해지자 온다 간다 말없이 눈 갠 수표교로 교교한 겨울 달빛을 바라보러 가버려서, 그 선배를 찾아 나섰다가 결국 다 같이 수표교 위에서 악기 연주를 하고 겨울 산책을 하게 된 이야기. 굳이 말하자면 별것 아닐 수도 있는데, 연암은 그날의 일을 ‘다시는 그런 운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저자 이지양 선생은 그 이유를, “맑은 즐거움일수록 남들에게 말하려 해도 너무 싱거워서 말할 것이 없고, 말하지 않으려면 아련하게 그 맑은 기운이 추억으로 맴돌아서 몹시 그리워지기 때문이다”라고 풀어 놓는다.
옛 노래의 의미와 역사
이 책의 저자는, 무엇보다 이름만 알려졌을 뿐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어떤 내용의 곡들인지까지 알기 어려웠던 옛 음악들을 꼼꼼히 정리하여 해설한다. 피리 소리가 마치 바닷물 속의 용이 구불구불 즐겁게 헤엄치면서, 휘파람을 부는 소리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수룡음>이나, ‘황하가 천 년에 한 번 맑아진다’는 의미에서 나온 <황하청>, 볕이 아주 곱고 따사로운 늦은 봄을 뜻하는 <염양춘> 등 우리가 모르고 있거나 이름만 들었던 옛 노래들을 찬찬히 그 배경과 역사를 훑어가며 쉽고 자세하게 풀어준다. 각 노래마다 한국 전통 문화속의 음악을 알리려는 저자의 애정은,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담은 자유로운 글쓰기로 펼쳐져 독자들에게 더욱 쉽게 다가간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십이 가사 중 하나인 <춘면곡>은 ‘선비가 따뜻한 봄날에 느지막이 잠을 깨어 옷을 차려입고, 야유원으로 놀러 가서 기생들에게 둘러싸여 놀고 싶어 하는 심정을 읊은 노래’라고 해설하며, 옛날의 기생을 현재 톱스타 연예인에 비유하며 독자를 위해 즐거운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이 책에서 때로 콧등이 시큰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저자 자신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글쓰기 때문이다. 저자가 모친의 고향을 찾아가 “엄마 생전에 이곳에 모시고 와서 며칠 묵으며, 엄마의 유년기와 처녀시절 이야기도 듣고, 마을 옛이야기도 듣고 그렇게 돌아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후회하며, <회심곡> 한 곡조와 연결시키는 글은 음미할수록 맛이 나는 차를 마시는 듯하다. 이 책에는 그러한 전통 문화의 맛과 향이 진하게 담겨 있다.
옛글에서 우리 예술가를 만나다
우리나라에도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 <바이올린 플레이어>, <가면 속의 아리아>, <현 위의 인생> 등을 능가할 만한 음악가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저자는 우리 역사 속에 묻힌 우수한 예술가를 찾아 우리 선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먼저, 활을 만드는 장인바치로 일하던 관노가 거문고를 배워 장악원 악공으로 변신한 ‘김성기’라는 분이 있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과 삶은 여느 영화 속 이야기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높은 기개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보여 주는 목호룡과 관련한 일화나 말년에 집이 가난하여 작은 배를 사서 삿갓 도롱이에 낚싯대를 하나 쥐고 강물에 떠다니며 고기를 낚으며 살았다는 이야기는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해금 연주를 했다는 ‘해금의 독보’ 유우춘, 가야금 연주 때문에 장가를 못 간 민득량, 우리 식의 18세기 <가면 속의 아리아>로 여자 목소리를 잘 내는 남자 소리꾼 남학 등 천부적 재능을 타고나 재능을 완성시키느라 구도자처럼 살아간 사람들, 천형인 듯 고통을 안고 살아간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추천사
이지양 선생의 책, 《홀로 앉아 금을 타고》를 읽으며 나침반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름만 널리 알려졌을 뿐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어떤 내용의 곡들인지까지는 알기 어려웠던 옛 음악들을 참 꼼꼼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쉽게, 자세하게 풀어쓴 글은 음악의 소재와 주제, 양식이 왜 생겨났는지를 찬찬히 거슬러 올라가며 설명해 주고 있어 한국 문화의 전통 속에서 우리 음악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달랑 음악의 형식적 측면만 설명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나침반처럼 위와 아래, 좌와 우를 함께 알려주고 있으니 길을 잃을 위험이 없다고 할까요? 나침반은 산속에서 진가를 발위하듯 이 책 역시 실제 음악을 찾아 듣고 감상할 때 더 큰 가치가 있겠지요. 한번 보고 책꽂이에 꽂아 두는 책이 아니라 오래오래 곁에 두고 손때 묻는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_황병기(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