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에서 인간까지 포식자의 역사를 만난다
태초에 생명체는 모두 독립생활을 하던 자가 영양 생물체였다. 하지만 남의 영양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포식 행위의 등장으로 생명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가장 단순한 단세포 생물부터 복잡한 다세포 동물까지, 잡아먹으려는 자와 잡아먹히는 자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이는 다양한 생물의 급격한 진화를 촉진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박테리아에서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가 있다.
네이버에서 2000만 명에 가까운 방문자 수를 기록한 대표 과학 블로거 고든이 이 역사를 한 권으로 책으로 담았다. 저자는 길고 복잡한 진화 계통학적 설명이나 지질 연대표 대신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설명으로 오래전 지구에서 자신의 역사를 만들었던 수많은 포식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블로그를 통해 많은 독자에게 다양한 분야에 걸친 과학 정보를 전했던 경험을 살려 작성한 글을 읽다 보면 어느덧 과거를 살았던 가장 흥미롭고 기이한 생명체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교과서처럼 지질학적 시대에 있던 주요 사건에 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가장 흥미로운 포식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책의 전반부에는 5억 년 전 캄브리아기의 바다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 아노말로카리스, 고생대의 바다를 누빈 거대 연체동물과 투구 같은 단단한 갑옷을 두른 고대 물고기, 사람보다 큰 바다 전갈과 거대 노래기 등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 수많은 생물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육지로 상륙한 사지동물의 조상이 그 시대의 뛰어난 포식자였다는 사실과 현생 악어보다 큰 거대 양서류 포식자까지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거대 포식자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중생대에는 이미 잘 알려진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대형 수각류 공룡에 대해 사실은 시체 청소부였을지 모른다는 의외의 가설도 소개하면서 공룡 이외에 여러 다른 포식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흔히 공룡의 일종으로 오해를 받는 다양한 해양 파충류(어룡, 수장룡, 모사사우루스)와 하늘을 나는 익룡, 그리고 공룡 이외에 다른 거대 포식자까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수많은 포식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물론 중생대를 대표하는 생물이 공룡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중생대의 매력적인 생물이 공룡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생대에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거대 육식 동물인 검치호랑이를 비롯해 다양한 대형 육식 조류, 메갈로돈 같은 거대 상어와 고대 고래 등 다양한 포식자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지구 마지막 최상위 포식자인 인류에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담겨 있다.
우리는 고기를 얻기 위해 매머드를 사냥하는 원시인이 아니라 마트에서 고기를 구매하는 소심한 현대인이지만, 원시의 시대를 살았던 강력한 포식자에 대해 동경을 가지고 있다. 포효하는 티라노사우루스는 단지 어린이뿐 아니라 많은 어른을 영화관과 박물관으로 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고대 지구를 활보하던 최강의 포식자는 티라노사우루스만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고대 지구를 살았던 매력적인 생물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살기 위해 진화한 그들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긴 여러 가지 유산 역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