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한다!”
평화로운 목장에 위험한 그림자가 찾아 왔다!
산업화로 위협받는 무리에서 쫓겨나 홀로 떠돌던 늑대 한 마리.
종족 보존에 절박했던 늑대는
결국 늑대 대신 개를 선택하고…….
늑대의 선택을 막아 내야만 하는 양치기 개 잭의 숙명적인 대결!
어쩌면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아버린 ‘자연보호’라는 말이 이때쯤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산업화의 거센 물결이 전 지구를 휩쓸던 20세기 초, 그때 말이다. 개인 혹은 하나의 개체로서는 이러한 전 지구적 흐름에 저항조차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바닥에 흐르는 감정선은 무겁고 외롭다. 외로워서 이 책에 나오는 늑대는 배고픔까지 잊을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드는 생각이 이 책이 인간의 문명화에 혹은 산업화에 밀려난 늑대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어쩌면 이 책은 발레리 홉스의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진혼곡이 아닐까 싶다. 총과 대포에 밀려 미 대륙의 서로, 북으로 달아나야 했던, 어디 한 군데 사정을 호소할 데도, 머무를 데도 없이 몰살을 당했던 어느 원주민의 부족에 관한 이야기를 늑대로 상징하여 만든 이야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박하고 자연 파괴적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전해주는 자연 친화적 메시지
발레리 홉스는 이 작품의 전작(前作)인 《양 헤는 밤》에서 양치기 개, 잭의 어린 시절을 다루었다. 이 책의 후속작 《나는 버텨낼 거야》에서는 잭의 노년 시절에 포커스를 맞춘다. 하지만 단순히 늙은 개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어느새 늙어버린 백인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 나이 든 양치기 잭의 삶은 겉보기에 평화롭고 한가로워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문화와 질서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 바통을 이을 후계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은 은퇴하기 싫고, 끝끝내 버텨내고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은퇴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잭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특히 잭이 물리쳐야 하는 늑대의 위협, 이는 산업화 혹은 문명화로 대변되는 백인의 문화를 역류하는 것이기에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동시에 늑대도 마찬가지로 버텨야 한다. 성인이 된 늑대는 무리에서 쫓겨나고 미 대륙을 떠돈다. 처음에는 짝짓기할 수 있는 암컷 늑대를 만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싶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자신을 받아줄 늑대 무리도, 아니 산업화 때문에 같은 종의 늑대라고는 그림자조차 만나지 못한다. 게다가 큰 두더지와의 싸움에서 광견병을 얻고 만다. 그렇지만 늑대는 버텨야 한다. 버텨서 자신의 종족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이종 결합을 원하고, 자기가 봐둔, 보더콜리와의 교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보더콜리는 잭이 내심 후계자로 찍어둔 재키다. 이렇게 두 주인공은 각자의 처지에서 버텨야 한다. 그러나 버티는 게 둘에게 결코 녹록한 일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두 등장인물(?)에게는 거슬릴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하나는 문명화에 제대로 길들었고 또 하나는 적자생존의 자연의 법칙에서조차도 떠밀렸지만,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작가는 책의 처음부터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렇게 작가는 자연의 위대함을, 거센 산업화의 물결도 자연 앞에서는 얼마나 소소하고 무력한가를 드러낸다. 빌딩숲 사이에서 태어나, 환경 파괴를 눈앞에서 경험하고, 산업화된 사회의 각박함만을 경험한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꽤 의미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작품이 우리 아이들에게 거슬릴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을 깨닫게 하고, 자연 앞에 겸손할 수 있는 삶의 자세를 전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