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이 마음과 의식의 자리를 차지하고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개인을 대행하는 시대
강화되는 동시에 ‘남아도는’ 인간 존재의 역설
과학기술을 통한 지능 시스템은 무서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딥러닝을 통해 바둑 챔피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한동안 충격을 안겨줬던 알파고 같은 단적인 예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인간은 빅데이터와 발달한 지능 시스템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 그 시스템들을 활용하여 인간은 홀로 해낼 수 없는 많은 일을 손쉽게 수행하며 강화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발달한 기계 지능은 인간의 마음과 의식의 자리를 대체했고, 시스템과 네트워크의 복잡한 연결망은 인간 개인을 그 시스템의 일부로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은 분산된 지능 시스템의 가장 발전된 형태로, 인간 지능이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게 만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 지능을 통해 인간이 강화되는 현상은 인간이 스스로를 잉여라고 느끼는 현상, 그리고 동시에 실제로 기계에게 여러 역할의 자리를 내줌에 따라 실제로 잉여가 되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은 철학, 과학기술학 등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조망하여 강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의 존재 조건과 그 상황을 심도 있게 다룬 학술서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단순히 대립하는 관계로 받아들여지거나 조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그러한 생각들을 넘어서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강한 인공지능’이 도처에 있는 시대에, 근대적 인간주의가 상정하는 ‘인간성humanity’‘개인성’이 더 이상 유용하지 못한 가정에 지나지 않게 되었음을 논하고 잉여가 될 위험에 처한 인간의 처지를 철학적 관점으로 날카롭게 탐구한다. 아울러 ‘강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역사적으로 개괄하고 그 특성이 인간 존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인지 시스템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이미 사이보그로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관점에서 시작해, 이 책은 사이버 행위자들을 새로운 기준을 통해 구분하며, 인간을 강화하는 와중에 인간이 잉여가 되는 중요한 역설의 문제를 독자적이고 문제적인 방식으로 탐색한다.
인공지능은 처음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기계와 도구로 여겨졌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지능과 능력을 강화시키는 시스템과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이 책이 여러 관점에서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다루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분산된 지능 시스템의 가장 발달된 형태로서, 인간 지능이 전통적인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가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잉여가 되는 복합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다.─「서문」에서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김진석은 30여 년간 ‘포월’ ‘소내’ ‘엉삐우심’등 독특한 모국어를 통해 기존의 철학적 개념을 현실에 맞게 재전유해왔으며, 가상 현실, 시스템과 네트워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독창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이 책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능의 성질이 통찰, 사유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 기계 학습에 의한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역설하면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인간 존재가 잉여가 되고 있는 복잡한 상황을 인문학, 철학의 관점으로 포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철학적 사유와 텍스트 분석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할 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발전해온 역사를 충실히 되짚는다. 또 니체의 ‘더 전체적인 인간’, 루만의 시스템이론,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 캐서린 헤일스의 포스트휴먼 논의 등 다양한 분과의 이론을 분석에 끌어들이고 이를 당면한 논의에 알맞게 활용하고 변형시킨다. 자기 성찰이나 인간의 합리성과 같은 낡은 인간주의로 되돌아가는 미끄러운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인간 실존의 문제를 탐색하는 길을 이 책은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