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 대일본제국 대청제국
1.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1910), 독립협회(獨立協會, 1896), 황국협회(皇國協會, 1898), 광무개혁(光武改革, 1897), 일진회(一進會, 1904),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1905)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무렵, 동아시아에는 죄다 제국(帝國)이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제국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대한제국(大韓帝國)도 제국으로서 건국되었다.
그러나 한갓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하던 대청제국(大淸帝國)의 위상(位相)보다도, 더 볼품없는 대한제국이었다.
다만, 일본제국(日本帝國)은 그야말로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제국의 위력(威力)을 뽐내며, 러시아제국이나 대청제국, 나아가 대영제국(大英帝國) 등을 상대로,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을 도모했다.
여하튼, 대한제국(大韓帝國)은 한민족의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제국의 역사이지만, 기왕(旣往)의 단군조선(檀君朝鮮), 고구려(高句麗), 대백제(大百濟), 대륙신라(大陸新羅), 발해(渤海) 등에 비한다면, 실로 허명(虛名)뿐인 제국이었다.
그래서인지 근래(近來)에 역사를 살피는 자들 대부분은, 어쩐지 대한제국에 대해서는, 시나브로 함구(緘口)하며 침묵(沈默)하는 듯하다. 내놓고 떠벌이기엔, 당최 쪽팔리는 역사(歷史)인 탓이다.
그러나 그런 역사일수록, 더 자주 이야기하며, 그러한 시행착오(試行錯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역사라고 하면, 개나 소나, 독립운동이나 의병활동 등을 떠들어댄다. 그런 것이 여러 모로 이득(利得)이 되며, 공개적으로 주장하기에도 덜 쪽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독립운동, 의병활동, 민중봉기, 임시정부 등은, 별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한 활동에 의해,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독립(獨立)이나 해방(解放)이 이루어진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애당초 역사란 것이, 승자(勝者)나 강자(强者)의 조작적 기록인 것처럼, 그나마 그런 역사를 살필 때에도, ‘내로남불’이나 ‘팔이 안으로 굽는’ 식으로 살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역사는, 현재를 살아내는 서민대중들에게 그다지 도움 될 게 없다. 고작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써, 서민대중을 ‘개돼지’로 선동(煽動)하는 데, 악용(惡用)될 따름이다.
예컨대, 밑도 끝도 없는 반일주의(反日主義)는, 아주 대표적인 사례(事例)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을 ‘짱꼴라, 짱께’라고 비하(卑下)하든, 일본인을 ‘쪽빨이’라고 비하하든, 그런 것은 객관적인 역사적 판단과는 별개의 것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역사 공부는 오히려 국익(國益)에 해(害)가 된다. 특히 일제강점기는 그러한 측면에서 대표성을 갖는, 역사적(歷史的) 사례(事例)라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1910) 또는 구한국(舊韓國)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재했던 帝國으로 이씨조선(李氏朝鮮)을 계승한, 한국사(韓國史)의 마지막 군주국(君主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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