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위안스카이
1.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우덕순(禹德淳, 1880~1950), 김구(金九, 1876~1949)
역사를 살핌에 있어, 미시적(微視的)인 측면에 주안(主眼)하여, 민중사관(民衆史觀)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 유행하는 듯하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인류사(人類史)의 실상(實狀)은, 그러한 미시적 측면의 변화보다는, 거시적(巨視的) 변화에 의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안중근(安重根)이 한갓 일개(一介) 서민대중(庶民大衆)의 입장에서, 향촌(鄕村)에서 일본(日本) 순사(巡査)를 암살했다면, 그 사건은 역사에 아주 미미(微微)하게 기록되어, 이내 잊혀 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요행히 미시적 관점에 의해 발굴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발굴되어 공개된다 한들, 그 사건이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역사에 있어, 어떤 결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한제국(大韓帝國) 독립군(獨立軍) 장군(將軍)으로서, 일본제국(日本帝國) 조선(朝鮮) 통감(統監)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사건은, 당시의 국제정치(國際政治)적 판세(判勢)까지 변화시킬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 사건에 의해, 대한제국의 식민지화(植民地化)가 본격화(本格化)되었고, 이내 강력한 무단통치(武斷統治)가 실행된다.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역사 연구방식은, 흔히 미미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곧잘 침소봉대(針小棒大)함으로써, 인간존재(人間存在)의 감성(感性)을 자극하는 방편을 활용한다.
예컨대, ‘세월호 사건’에서, 송신자(送信者)의 죽음 직전 송신(送信)된 음성 메시지의 경우, 이를 접하는 서민대중의 감성적 감정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그러한 미시적 관점은, ‘세월호 사건’이 지니는 진실(眞實)에 접근하는 데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객관적 진실을 훼손(毁損)하기 십상이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