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들 하니. 도련님이 돌아오셨잖니. 어서 움직여.”
긴 전쟁 끝에 돌아온 도련님은 만신창이였다.
레리트의 먼 사촌이자 심술궂던 소꿉친구 릭셀리언은
전쟁에서 신을 죽인 대가로 눈이 멀어 집으로 돌아온다.
“……언제부터 네가 사용인들을 이리 쉽게 부렸지?”
“무슨 소리. 이제 이 몸이 이 집안의 실세인데.”
“실세?”
“이제 나는 그냥 하녀가 아니라 하녀장 정도로 여겨야 할걸?”
전쟁에서의 승전보를 들으며 다시 찾아올 평화를 기다리지만,
눈먼 릭셀리언에 의해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릭셀리언, 너는 내가 죽여 달라 빌면 죽여 줄 거야?”
“아니.”
방금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해서 죽여 줄 수도 있다고. 아니, 나 좋아한다며?
레리트가 황당해하고 있는데 릭셀리언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아무리 빌어도 너는 최대한 오래 내 옆에 있어야 해.
나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놈이라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