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가 문득 떠오른 아무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고 싶을 때 말문을 여는 말습관이다. 엄마가 무언가를 말씀하실 때 나는 내심 별스럽지 않게 생각할 때도 있어서 건성건성 대답했는데 엄마는 뜬금없는 내 이야기를 곧잘 들어 주시고 맞장구도 쳐주셨다. 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이든지 엄마는 반가워해주셨다. 엄마에게도 인생이 있으셨고 엄마만의 즐거움이 있으셨지만 “엄마”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의 “편함”이었다. 지나온 시간의 곳곳에 엄마가 있기 때문에 사실 나를 포함한 우리 다섯 딸의 모든 과거는 엄마와 함께 회상하며 주고 받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슨 대단하지도 않게 기억 속에서 튀어 나온 장면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부분은 같고 어느 부분은 기억이 달랐다. 아마도 엄마와 우리는 때로는 아주 가까이 때로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이 조각들을 맞추며 노닥노닥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쉼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엄마는 우리를 우리는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주어지지 않을 것에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그런데 아주 순간적으로 당황스럽게 그런 시간이 왔다. 그제서야 나는 오래 묻어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정리하듯이 엄마와 지냈던 시간들을 차근히 돌아보게 되었다. 엄마가 나를 품은 시간은 분명히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는데 나의 기억은 파편들처럼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어떤 일은 기억에 선명해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았다. 무슨 음식을 만들거나 무슨 노래를 들어도 나는 아직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에 관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남았다. 또 이제는 엄마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나의 사는 것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이 남았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척박한 삶에 용기를 내신 것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 남았다. 이 이야기는 엄마 앞에서 못다한 나의 서툰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20. 여름. 가만가만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