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타의 인간 활동과는 달리 예술 분야는 그 속에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도무지 다른 방향의 활동을 도외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문학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미술이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가 기본적인 일상을 내팽개치다시피 하며 예술에 빠져들어 헤어날 줄 몰랐다. 물론 대가는 혹독해서 숱한 예술가들이 반미치광이 아니면 비렁뱅이 취급을 당하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일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그림을 보았고 음악을 들었고 글을 읽으며 지냈건만 매번 예술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특별한 점이 없는 필자는 그저 평범하게 자라서 학업도 그만그만한 성적으로 고교까지 마쳤다. 이과 출신이라 대학도 별생각 없이 친구들이 많이 선택하는 공대로 진학해 당시 잘 나간다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아뿔싸! 솔직히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부였다. 그렇게 대학 생활의 절반을 보내고 나서야 난 어느 순간 “왜?”라는 의문부호가 아둔한 머리에 간신히 떠올랐다. 이어 “난 누구? 여긴 어디?”라는 근원적 물음이 뒤를 따랐던 끝에 난생처음 평범한 인생 궤도를 이탈하게 됐다. 선택지는 단 하나. 그림이었다. 대학을 그만두었고 흔한 풍경처럼 주위의 우려와 만류가 극심했지만 드디어 지루한 쥐구멍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다. 늦깎이로 미술학원에서 입시 그림을 배워 다행히 미술대학에 다시 진학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순수회화의 길로 가서 화가가 되었다가는 굶주리기 십상이라는 얄팍한 계산이 있었는지 시각디자인을 전공해 물 만난 고기처럼 희희낙락 신나게 놀았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그림으로 밥벌이를 해왔지만 역시 화가는 되지 못하고 그림 동네 언저리만 배회하고 있는 상태다. 어째서 온전히 그림에 내 전부를 던지질 못했을까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니 일상을 팽개치고 오로지 예술의 길을 걷기에는 너무 속물이 아니었나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혼자 아쉬워하는 지금도 내 일상의 거미줄을 걷어버리고 그림 나라로 떠날 수 없다. 하지만 미련은 떨쳐버리기 어려워 여기 몇 가지 작품들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쓰고 그려보았다. 예술에 끼어 있는 여러 가지 선입견과 거품을 걷어버리고 볼펜으로 쉽게 그리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보려 했다. 나는 비록 갈 수 없었지만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 보며 스케치할 수 있어 좋았다. 이름 없는 작가의 작품도 있고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 이야기도 있어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인간의 눈으로 들여다본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 조용히 그들과 마주 앉아 보면 의외로 예술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