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프랑스의 18세 청년, 라 보에시의 손에서 태어났다. ‘왜 사람들은 복종하는가?’라는 한 청년 법학도의 질문에서 시작되어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은 물론 정치철학의 핵심 사상을 제공한 격정적 논설이다. 라 보에시는 복종의 가장 큰 이유가 ‘습관’이며 자유에 대한 ‘망각’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절대권력이란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 오랜 습관이 이어져오면서 종속의 상태를 받아들인 부모 밑에서 자란 후세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자유’를 알아보지 못하고 종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시민들에게 향락과 소비의 문화라는 복종에의 미끼를 던지며, 지식인을 배척하고, 때로는 폭력으로 복종의 메커니즘을 지속시킨다. 그리하여 자유를 잃은 사람들은 용기도 함께 잃어가며 ‘자유’라는 자신의 욕망 찾기를 잊고 살아간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실은 《자발적 복종》이 집필된 지 약 500년이 지난 한국사회에서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라 보에시의 역설처럼, 자발적 복종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자유를 향한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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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1530년 프랑스의 중서부 페리고르Perigords의 소도시 사를라Sarlat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법관들이 나온 교양있는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인 탓에 삼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가 자신의 명저 《자발적 복종》 서설의 초고를 썼던 때는 오를레앙대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이후 오를레앙대학교에서 법학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553년 보르도의회 고등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 본래 이 직위에 임명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26세. 이보다 두 살이나 어린 나이에 이 직위에 올랐던 것은, 라 보에시의 재능과 학문적 성취에 감복한 오를레앙대학교의 담당 교수들이 그를 적극 추천한 결과였다.
재판관이자 철학자였으며 29편의 시를 남긴 뛰어난 시인이기도 한 라 보에시는 33세의 이른 나이에 전염성 복통으로 요절했다. 임종 직전 그는 유언서를 작성해 자신이 쓴 모든 원고와 소장한 서적을 절친인 몽테뉴에게 상속했다. 몽테뉴는 라 보에시가 남긴 모든 원고의 발행을 시도하면서도 독재 타도를 주장하는 소책자인 《자발적 복종》만은 제외했다. 왕의 재판 권한을 대리하는 고등재판소 재판관이 쓴 독재자에 대한 격문은 왕정 질서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었다. 라 보에시의 이 저서는 1574년 처음 세상의 빛을 보았고, 그가 남긴 사상은 이후 프랑스혁명과 아나키즘운동, 시민불복종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라 보에시와 그의 절친 몽테뉴가 나눈 각별한 우정은 몽테뉴의 《수상록》 중 <우정>이라 명명된 장에 잘 묘사돼 있다. 거기서 몽테뉴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에 대한 유명한 말을 남긴다. “누군가 내게 왜 내가 그토록 라 보에시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난 이렇게밖에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게 바로 라 보에시니까, 그리고 그게 바로 나니까.” 지금도 파리 8구에는 몽테뉴 가街와 라 보에시 가가 맞닿아 있다. 마치 후세의 사람들이 두 사람의 각별했던 우정을 죽어서도 이어주고 싶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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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소개
역자 서문 ● 복종할 것인가, 자유로울 것인가
자발적 복종
복종, 인간의 놀라운 악습
자유,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목록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독재자의 유형
습관, 자발적 복종의 첫 번째 이유
맑은 오성, 굴종의 관습을 깨부수다
백성을 잠들게 하라
지배의 공식
군주와 신하들, 그 인간 이하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