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천오백 년 전 ‘압독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대국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경북 경산 지역과 대구시 수성구 시지 인근은 압독국이라는 나라였다. 그 당시 압독국은 사로국(신라)이 견제할 만큼 큰 세력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이를 견제한 사로국(신라)의 간섭으로 신라 초기에 속국이 되었다.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나라인 압독국을 알게 된 계기는 안타깝게도 유물 밀수출 사건 때문이었다. 그 당시 지배계층의 무덤이었던 고분군이 허술하게 관리되어, 고분 안에 있던 순금 왕관과 귀걸이, 반지 등의 유물들을 훔쳐가는 도굴꾼들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유물들이 일본으로 밀수출되고 있었음에도 사라진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도굴꾼이 세관에서 붙잡히면서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만큼 큰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작은 고대국가 유물 도난 사건이라서 도굴꾼과 허술한 문화재 관리에 대해 탓할 뿐 잊혀가는 사건이 되어갔다. 물론 그 후로 경산시에서는 압독국 유물들을 박물관으로 옮기고 방치되고 있던 고분군들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나는 동화작가로서의 소명 의식이 들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우리 주변에 있는 소중한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과거에는 누군가가 지키고자 했던 소중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러한 소명 의식으로 압독국에 대해 조사를 하다가 압독국에서 지배자가 죽으면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압독국 지배자의 무덤에서 어린아이의 순장이 확인됐다는 기사를 읽는 순간,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압독국에서 순장 당해 억울하게 죽어간 아이였지만 그 영혼이 있다면 도굴꾼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고대국가에서 순장을 한 이유가 지배자에 대한 공경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어린아이를 묻은 경우는 어린 영혼과 함께 지배자의 부활을 염원하기 때문이었다는 글을 접했다. 수많은 생각과 질문들이 꼬리를 물어 압독국을 지키고 싶은 ‘여의’가 탄생했다.
‘과거를 잊어버리는 자는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게 된다.’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이다. 작은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이 모여 면이 된다. 작은 점과 같은 역사가 모여 큰 역사를 이룬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역사들을 기억하고 지켜나가려고 애쓰다 보면 큰 역사는 자연스레 빛날 것이다.
이 책이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역사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천오백 년 전 압독국을 기억하는 이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