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만에 칸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작품, <기생충>. 그리고 그 영화를 감독한 봉준호. 그가 한국 영화사에 남긴 업적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없을 대단한 것이란 점은 모두 인정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찬사가 울려 퍼지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웅 봉준호가 아니라 인간 봉준호, 감독 봉준호가 궁금하다.
계획이 없었지만 운명처럼 만난 남자
이 책의 저자는 2003년 영화 담당 기자가 되면서 운명처럼 영화 <살인의 추억>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축하연 자리에서 만난 묘한 느낌의 감독을 주목하게 된다. 저음의 목소리로, 그러나 달변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도 대화를 이끌어가던 그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지 17년이 지난 어느 늦겨울, 혹은 이른 봄, 고요한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도 저자는 그때의 인연 때문인지 아카데미상 시상식 속보가 올라오고 있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리고 ‘작품상 수상’이라는 속보가 떴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네 사람이 어느 날 국가적 ‘위인’이 돼서 떡하니 나타난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손흥민, BTS, 페이커와 함께 한국의 4대 엘리트가 된 봉준호가 아니라 17년 전 술자리에서 만난 인간 봉준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은 “야 너두(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위인전이 아니다. 그 남자, 봉준호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가 같이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 감독, 영화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가정에서 자란, 소심한 소년. 만화영화를 좋아했고 연세대에 갈 정도로 공부도 잘했지만 사회적 불의를 보면 마음에 걸려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청년. 촬영장이 엉망이 된 꿈을 자주 꿀 정도로 불안해서 모든 것을 콘티로 그려놔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적인 감독. 우리가 인상 좋은 천재라고 생각했던 봉준호의 뒷모습이다. <살인의 추억>을 제작한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봉준호 감독을 ‘살리에르’라고 표현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그 살리에르가 맞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모차르트’가 부러워서 본인이 궁중음악가임에도 항상 시기와 질투를 했으며, 남모르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또 한 명의 비운의 천재말이다. 소심하고 사회에 관심이 많으며 불안해하는 봉준호 감독이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였기에 모든 것에 완벽을 기하려 노력함으로써 ‘봉테일’이 되었고, 완벽한 존재가 아닌 인물이 나와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거대한 영화 담론이 아니지만, 인간 봉준호와 그가 살던 시대를 돌아봄으로써 우리에게 더 발전된 시각을 갖게 한다. 저자의 말대로 봉준호월드를 통해서 우리 시대, 우리 세대를 이해하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