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물결이 이는 네바 강가에서 옛시인을 만나다>
네바 강과 네브스키 대로, 푸슈킨,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작품의 배경이며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무대가 되는 곳,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2세의 치적과 동시에 레닌의 혁명운동이 벌어졌던 러시아 제2의 도시. 역사가 유구한 만큼 사연과 시름 또한 깊었던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일컫는 말들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네바 강의 물길을 따라 올라가며 페테르부르크의 속 깊은 얘기를 끌어내고 있다. 특히 푸슈킨의 시 '청동거울'과 1896년 고종의 특명전권공사로 러시아를 방문했던 충정공 민영환의 '해천추범', 1946년 이곳을 방문한 월북 작가 상허 이태준의 '소련기행'속에 그려진 내용을 토대로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버무려내는 저자의 솜씨는 가히 놀랍다. 이와 더불어 푸시킨의 시적 감성과, 탁월한 묘사력으로 먼 이국땅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는 민충정공과 이태준의 글은 세월을 건너뛰어 시공간을 함께 호흡하게 한다. 단순히 도시 답사기가 아닌 짜임새 있는 액자소설처럼 읽는 재미, 느끼는 재미가 흐뭇하다. 책 속에 푹 빠져 정신을 잃을 즈음, 페테르부르크는 더 이상 이방의 도시가 아닌 우리 정신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이야기들과 역사의 페이지들로서 우리 지성의 가까운 자리로 와 있다
<돌과 물이 만나 도시를 만들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즉 ‘성인 베드로’의 도시다. 여기서 베드로는 반석 혹은 돌이라는 뜻으로 페테르부르크는 ‘네바 강변의 서 있는 돌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목조 건축이 기본이었던 러시아에 ‘돌’로 만들어진 영원한 도시와 그를 닮은 나라를 건설하고자 원했던 군주 표트르는, 1709년 폴타바전쟁에서 스웨덴에 승리한 후 비로소 네바 강변 지역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박차를 가한다. 일찍이 서유럽의 선진문명을 러시아에도 도입하기를 원했던 그는 유럽을 향한 창으로서 이 새로운 도시건설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새 러시아 건설(재건)이라는 대의까지 함축하고 있었다. 늪지에 인공의 도시를 건설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표트르는 강력한 의지로 해냈고, 페테르부르크는 수도라는 위상에 걸맞는 도시가 되었다. 돌과 물이 만나 빚어낸 페테르부르크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애초 의지와 이성으로 건설이 시작된 도시인만큼 돌로 상징되는 인공의 세계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창조된 문화의 세계를 읽어내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확인해야 할 바 역시 이 도시에 축적되고 보이지 않게 스며든 상징과 문화 이야기들이며, 이 책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 젊은 수도 앞에서 늙은 모스크바는 광채를 잃다>
에르미타쉬 박물관! 제정 러시아의 황궁이며 황제의 평소 집무실이었던 겨울궁전(동궁)을 포함하여 4개의 건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곳은 그 자체로 페테르부르크 역사와 문화의 상징이다. 소장 예술품이 250~270만점이라고 하는데 작품의 수뿐만 아니라 예술적 수준도 가히 세계적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내로라하는 세계적 예술뿐만 아니라 제정러시아 시대의 영욕도 함께 엿볼 수 있다. 1905년 1월 궁전광장이 주무대가 된 ‘피의 일요일 사건’을 혁명의 도화선으로 하여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은 페테르부르크로부터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빼앗아가버렸다. 이후 소비에트 정권은 1918년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기고, 이 도시는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제2차세계대전 때 독소전으로 이 도시는 또 하나의 상처로 얼룩지지만 페테르부르크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1990년 잃었던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으면서 러시아 제2의 도시로서 입지를 견고히 한다. 세월이 더해질수록 페테르부르크는 수도 모스크바가 무색할 정도로 그 광채를 발하고 있다.
<영웅의 도시에서 빅토르 최를 노래하다>
페테르부르크가 낳은 마지막 영웅 빅토르 최! 러시아인들이 신처럼 여기는 시인이자 기타리스트요,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그는 한인 3세로 전 세계적으로 추종자를 거느렸을 뿐 아니라 4개국 도시의 거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인물이다. 그는 20세가 되던 해에 그룹 ‘키노’를 결성하고 15세부터 시작한 시작(詩作)과 음반 발표 등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무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불타는 창작열과 예술혼으로 승리를 거둔다. 1986년 6번째 앨범 『밤』이 발매 몇 달 만에 200만 장이나 팔려나갔고, 1988년에 개봉하게 되는 누그마노프 감독의 영화 「이글라」는 그에게 두 번째 밀리언셀러를 안겨준다. 빅토르는 노래 「변화」로 개인이 아닌 소련 젊은이의 요구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총 열 장의 앨범과 네 편의 영화로 세계적인 전설이 된 한인 3세 예술가. 1990년 대형버스와의 충돌로 짧은 일생을 마감하였지만 그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러시아 젊은이들의 희망이자 영웅으로 남아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다. 혁명의 소용돌이가 낳은 수많은 영웅들을 제치고 러시아인들로부터 더없이 사랑을 받았던 그는 이제는 보고슬랍스카야 묘지의 잘 정비된 대리석 원형 기단의 검은 기둥과 그 위의 반달 모양으로 생긴 청동 기념비 아래 누워 있다. 여위고 반항적인 젊은 한국인의 얼굴을 지녔던 고인의 묘지 주변에는 많은 꽃과 그를 추모하는 물건들이 놓여 있다. 아직도 러시아인들의 가슴에 그가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