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 그로 넌센스는 ‘모던’의 본질
21세기에 들어서도 인터넷으로 떼돈을 번 것은 포르노 업자들뿐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향락산업은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엽기’ 코드가 선풍적으로 유행했었고, 이즈음엔 각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드라마 이상으로 시청률을 높이고 있다.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한 것들, 웃음에 대한 욕망은 식을 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감각적 자극에 대한 욕망은 1930년대에 이미 본격화되었다. 1930년대 많은 대중을 사로잡았던 것은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현상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감각적 자극이었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퇴폐적이고 외래의존적’이라고 경멸해마지 않았고, 최근의 연구 또한 서구에서 일본을 거쳐 나타난 식민적 현상이나 소비 자본주의의 부수물 쯤으로 치부해 버렸지만, 오히려 1930년대의 문학과 예술은 그러한 자극에 대한 반영이자 적극적 대응이었다. 따라서 1930년대의 문학과 예술에는 ‘에로 그로 넌센스’에 대한 매혹과 더불어 그것을 뛰어넘고자 하는 예술적 상상력이 약동하고 있다. 계급적 이데올로기로는 포착되지 않는 미묘한 욕망의 움직임과, 전통문화와 외래 문화가 공존하고 경쟁하면서 근대적 대중문화가 확산되어 가는 핵심에 바로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감각적 자극이 놓여 있었다.
“에로가 빠져서는 안될텐데…” ; 잡지사 회의의 풍경
당시 잡지사에서 “에로”는 꼭 들어가야 할 요소였다. “밤 열시경, 서울의 최씨는 나이 오십쯤 되는 노파가 술취해서 바래다 달라는 것을 데려다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파가 최씨에게 달려들어 별별 추한 짓을 다했다. 엉겁결에 성추행당한 최씨가 노파를 파출소에 고발했다.” 이 기사는 “에로 백퍼센트 애욕극”이라는 이름으로 『별건곤』에 실렸는데, 이런 에로틱한 이야기 없이 더 이상 잡지가 팔리지 않기 때문에 다들 앞다투어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이야기들을 찾았다. 감각적인 자본주의 핵심에 있었던 ‘에로 그로 넌센스’는 당대 대중문화를 구성하는 요소였다. 대중들은 도시에서 느끼는 피로와 위로를 ‘에로 그로 넌센스’에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