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5472km/h.
유리에 금이 가는 속도.
한 시간에 5472킬로미터를 가는 빠르기.
두 번의 ‘사랑’에서 ‘사람’을 잃고, 마음도 잃어버린 여자 차유리.
잘나가는 인테리어 회사의 메인 디자이너인 그녀는 잠자는 시간 빼곤 내내 일을 한다.
그렇게 번 돈은 그녀의 시한부 인생을 하루하루 줄여 가고 있다.
한 번의 ‘사고’에서 ‘모든 것’을 잃고, 아무 괴로움 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남자 설기헌.
마치 근사한 레고 세트를 선물받는 것처럼 풍족한 부모에게서
강남의 최고급 레스토랑 라 메르를 받아 평생 처음 제 이름이 박힌 명함을 가지게 됐다.
“나이아가라? 이게 지중해풍 컨셉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입니까?”
세상만사 아무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라 메르의 바지 사장 설기헌 앞에 호출된
오드 디자인 연구소의 메인 디자이너 차유리.
보기 싫은 체크무늬 남방, 펑퍼짐한 차림의 그녀가
최고급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를 망쳤다며 클레임을 건 그 앞에 말했다.
“사장님의 라 메르(프랑스어 바다)는 지중해입니까 아니면 대서양입니까.”
그녀가 라 메르에 펼쳐 놓은 대서양의 한 자락에서
그는 어디론가 출발점도 도착점도 없이 살아온 삶의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차유리.
그 여자를 향해 뛰어가기로.
하루하루 죽을 듯이 일해 번 돈으로
하루하루 줄어드는 숫자가 자신의 줄어드는 삶인 걸 알지만.
그게 유일한 사는 이유가 되어 버린 그녀 앞에 나타난,
배알도 없고 머리도 없는 저 팔푼이 금수저 같은 남자가
자꾸만 제 삶에 끼어드는 게 두려운 걸까 아니면 그 반대인 걸까.
짙은 커피 향 같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