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1931년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출생한 필자는 유년시대와 소년시대를 해주에서 보내면서 8.15해방을 맞이했다. 해주동중(海州東中) 학생시절 해방된 북한에 실망한 나머지 16세의 나이에 홀로 ‘죽음의 38도선’을 넘어 서울로 와 서울중학, 고려대학교 등에서 수학을 계속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지원, 전·후방에서 군복무를 마친 후 육군대위로 명예제대하여 학창으로 복귀했다. 그후 한국일보와 동양통신에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동양통신 워싱턴 특파원 때 박정희 대통령의 방미를 현지 취재했으며 정치부장 겸 편집부국장을 거쳐 청와대 대변인, 문화공보부장관 등 요직에서 박 대통령을 9년 넘게 보좌했다.
유신시대에는 전통적 한미우호관계를 계속 돈독히 유지하고자 ‘한국미술 5천년 전시회’를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순회·개최했다. 뉴욕 전시 때에는 특히 한미정상회담을 아울러 개최하려고 비밀리에 기획하고 있었으나 10.26유고사태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또한 국군통수권 이양문제가 내부적으로 제기되었을 때 헌법조항을 적시하면서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홀로 주장, 문민우위원칙을 고수한 일화 등이 전해져 온다.
그후 공직을 스스로 떠난 필자는 정치에 관여치 않고 오로지 국제문화 교류에만 관심을 쏟으며 오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