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매일신춘문예> 당선,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기까지 활발한 시작 활동을 해온 박윤배 시인이 그간 펴낸 6권의 시집 중 다섯 권을 묶은 통합본 시 모음집 『나의 알약들 54321』을 출간했다.
최근에 펴내 문단의 찬사를 받은 『오목눈이집증후군』(북랜드, 2018)을 제외한 첫 시집 『쑥의 비밀』(1993), 『얼룩』(2002), 『붉은 도마』(2009), 『연애』(2013), 『알약』(2015)의 시편을 이 한 권으로 엮었다. 책 제목 『나의 알약들 54321』에서 알 수 있듯 근작 시집이랄 수 있는 『알약』의 시편을 맨 앞에 싣는 구성으로 시인이 오늘날까지 걸어온 시와의 노정을 되돌아볼 수 있게 했다.
1. 『쑥의 비밀』에서는 당시의 사회적 갈등과 자신의 현실에 대해, 시인으로 또 교사로서 제대로 ‘사는 법’을 고민하면서도 서정으로 위무하고 진정성으로 다가오는 따뜻한 리얼리즘의 초기 시편이 실려 있다. <고층에서>, <사는 法을 묻는다>, <교무수첩>·1~14 등이 있다.
2. 『얼룩』의 시편들은 ‘얼룩’과도 같은 삶의 상처를 서사적으로 이미지화하면서도 저변에서 ‘사랑’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시인의 희망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한 송이 피고 나면 다시 피는 일을 멈추지 않는 걸 보면 상추밭이 다 망가진들 어떻겠습니까?”(<나팔꽃이 피었습니다>).
3. 『붉은 도마』는 출간 당해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하게 한 시집으로 “일상의 고통을 넘어 생의 근원을 찾아가는 집요한 시선, 치열한 언어”(이진흥 시인)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그간 시인이 천착해온 가족 일상 존재 등 인생에 대한 탐색이 달관과도 같은 깨달음이 있는 선시풍의 시편으로 형상화되었다.
4. 『연애』, “…누가 나를 알기 전에, 내가 그대를 먼저 알아가는 그 설렘이 나는 좋다. 그리하여 그대를 사랑하게 되고 언젠가는 떠나보내게 된다. 그때 나는 한 번 더 좋다. 얼떨결에 저지른 일이라고 변명을 하든, 아니면 열렬히 사랑했노라고 진지하게 말하거나 표정 짓는 순간 그 대상인 시는 얼마나 떨리겠는가. 그 떨림이 남기는 여운이 좋다. 도입부가 좋다. 그리고 마지막 행이 좋다. 모든 번잡함과 열망과 결핍과 애증을 다 내려놓고 말없이 돌아서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곧 내가 시를 쓰는 일이다. 제대로 삶을 사는 일 아니겠는가?”(시인의 말)
5. 『알약』, 오늘날 ‘수인’ 때로는 ‘병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에서 시가 ‘알약’이 되어야 한다는 것, 마음속에 삼키고 살살 녹여보면 ‘쓴맛’이 아닌 ‘단맛’이 나는 치유의 시편이 담겼다. “야성적 언어, 남성적 어조가 활달한 시집이다. 하늘과 땅의 접경에서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 이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아프고 또 아픈 일상일지니, 구름도 할미꽃도 바람도 여자도 시인도 이 땅에서 잠시 만나 뜨겁게 한 몸으로 어우러지며 일으키는 먼지(중략) 우리 일상을 아연 살 맛 나게, 사랑할 맛 나게 돌려놓는 시집”이라고 문학평론가 이경철이 평했다.
“허공을 떠돌던 시 한 편이 한 사람에게 안겼을 때 그 시 한 편은 그 사람의 삶, 영혼을 이끈다. 곧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상처 입은 이들을 보듬고 껴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인의 말이다. 시인이 오랫동안 걸어온 문학의 길에서 담아온 따뜻함과 감동이 있는 풍성한 시 모음집 『나의 알약들 54321』을 통해 위안과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