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 그 역설의 역사
세계적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가톨릭이지만, 한국가톨릭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럼에도 한국가톨릭은 가톨릭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3위의 순교성인이 시성될 만큼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교난(敎難)의 파도를 무수히 넘어 오늘날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기에 이르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가톨릭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단 한 명의 선교사, 성직자도 없이 교회가 먼저 창설되었으며, 심지어 교구 설립 이전에 이미 순교자를 배출했다는 사실이다. 여러 교파로 나뉘는 불교나 개신교(프로테스탄트)와 달리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가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가톨릭의 특징을 감안할 때, 더욱 역설적인 역사인 셈이다.
가장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외래 종교지만 토착민 스스로 들여와 초석을 놓은 한국가톨릭의 아이러니한 역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선교지 문화에 수용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초기 한국가톨릭은 원리원칙을 고수함으로써 대대적인 박해라는 참사를 불러왔다. 아울러 정치적 상황을 외면했던 초기 한국가톨릭에 반해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지금은 어느 지역에 가도 어렵지 않게 가톨릭 성당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종교지만, 그렇게 뿌리내리기까지 한국가톨릭은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과 상황에 거듭 직면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