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머리말
들어가는 말
남편도 자신도 바친 한국 사랑 39년
제1장 빛과 어두움의 굴레에서
사부인 내한 전 1899년 여성선교사회 창립
11명이 모인 1900년 여성선교사회
1901년 사부인 이름 처음 등장
평양에서 열린 연회에 첫 보고서 제출
결혼 전 미스 해먼드로 제5회 연회 보고서 제출
이화학당 본관에서 열린 로버트 샤프와의 결혼식
1904년 연회서 충청도 첫 선교 경험 보고
1905년 연회 손풍금 전도에 몰려든 현지인 보고
남편 잃은 슬픔 속에 보고한 1906년 연회
제2장 충청 여성 선교의 개척자
1907년 연회, 스웨어러“ 사부인 빈자리 너무 아쉬워”
케이블 부인이 보고한 1908년 연회
귀임한 사부인과 케이블 부인의 공동 보고(1909년)
사경회 시험공부 하는 여신도들(1910년)
궤도에 오른 충남의 여성 선교(1911년)
지령리교회에서 맺은 유관순과 신앙의 어머니 사부인
“강건하라!” 시 읽으며 각오 다진 1912년 보고
빈 배, 마른 풀 위에서 밤새운 섬 지방 전도(1913년)
선교구역 두 번씩 순회하며 여성 구원(1914년)
새 삶 찾는 사람을 보는 기쁨(1915년)
배어 선교사“ 사부인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1916년)
한국 땅 다시 디뎌 기쁘다(1917년)
사부인을 교육한 뉴욕 유니온선교사훈련원
감사할 줄 아는 신도들의 본격 등장(1918년)
제3장 3·1운동과 교회의 시련
3^1운동으로 연회 연기…“ 많은 목회자 감옥 속에”
3^1운동 참가 이화학당 학생들의 고문 증언
3^1운동 여파로 지역별 연회(1920년) 보고서 없어
선교 보고도 못 하고 휴가 떠나는 사부인(1921년)
제4장 3·1운동 이후의 선교
사부인 미국에서 돌아와 선교보고 연회(1922년) 참석
포드차로 선교여행의 날개를 단 사부인(1923년)
양반 출신 황 부인의 전도부인 변신(1924)
전도부인의 고군분투를 지휘하는 사부인(1925년)
무르익은 모습 보여주는 1926년의 선교
헌금하기 위해 땔감 더 많이 모은 마르다의 신앙(1927년)
선교구역 조정으로 공주 논산만 담당(1928년)
1928년 영명 입학생 박한나의 증언 - 258
선교에 활용된 다양한 교통수단(1929년)
구호품을 활용한 선교의 지혜(1930년)
논산 광리교회의 사경회를 통한 부흥(1931년)
제5장 제도속에 가려진 여선교사들의 열정
‘지방목사서리’로 임명된 사부인(1931년)
지방선교 중 실족으로 중상 입은 사부인(1932년)
1년간 교회당 4곳 봉헌(1933년)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 수양회(1934년)
공주교회의 금주 선전 깃발 대규모 행진(1935년)
격년제로 열린 지방 연회(1937년)
사부인 선교기념비 제막식(1938년)
은퇴 무렵의 사부인 만난 김영한 장로
사부인 은퇴로 특별 임명자 명단에 없어(1939년)
한국 떠나기 전 소장도서 이대 기증 311
제6장 한국을 떠난 사부인의 삶과 죽음
뉴욕주 실버크릭에서 1940년 여름 보내
‘로빈크로프트 - 봉사의 역사’에 기록된 은퇴자의 하루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들으며 소천
제7장 후손들이 말하는 사부인
그의 고향 캐나다 작은 마을 야머스를 찾아서
전기를 마치며 사부인, 한국과 한국 여성을 사랑한 충청 선교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