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누구나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고들 야단이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면 우선 공부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배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공부나 배운다는 사전적 의미를 떠나서, 배우는 것이 공부한다는 것 보다 더 자발적인 것처럼 그려진다.
왜냐면 책가방을 들기 시작하면서 시작한 공부는 대부분 정형화된 틀에서 지식을 받아들였던 수동적인 과정이었다. 기억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그렇게 많이 접해왔던 지식을 현실에서 사용하거나 응용하는 정도가 매우 적어 보인다. 물론 그 지식이 일상의 기저를 이루고 사회 통념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습득했던 지식만으로는 세상을 헤쳐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도 경험에서 알았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록 소소한 일상일지라도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만나 스스로 이치를 깨달음으로서 해결했다. 설사 누군가 가르쳐준다 해도 직접 내가 하면 안 되는 경우도 허다 했다. 그 이유는 상황이 다르고 실행하는 사람의 삶의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찾아서 배운 결과로 이치를 알아낸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이란 누가 가르쳐서 습득되었다기 보다는 스스로 터득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이다. 누가 알려주는 사람도 학교 같은 장소도 없지만 무릎은 탁 치는 깨달음의 습득이었다. 이러한 스스로 깨닫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는 식의 공부보다는 스스로 찾아 배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공부는 이미 존재하고 정립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지만 배우는 것은 아직 없는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다. 또 한가지 큰 차이 점은 배운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배운다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은 공유하고 나누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일방적이지만 배우는 것은 반드시 쌍방향적이어야 가능하다. 배우는 것은 소통하면서 습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존재하고, 그 상대방이 인간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다. 소통한다는 것은 상대가 무엇이든 상대방 눈높이에 맞춰서 나누고 베푸는 마음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요구하는 수준에 맞춰나가는 것이 제일 좋은 소통방법이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상황이 4차산업혁명시대의 속도를 재촉하고 있는데, 가까운 미래에는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보다 지혜가 풍부한 창의성 인재를 더욱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 창의성이 요구되지 않은 시대는 없었겠지만 지금은 팬데믹 쓰나미로 인해서 그 창의성 인재가 더욱더 요구되는 시점이다. 창의성을 소유한 사람이야말로 다양한 상황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는 각각 살아온 만큼 그 시대와 상황에 필요한 나름의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경험과 지혜는 높낮이를 따질 수 없는 소중한 삶의 가치이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서로 나누고 베풀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고,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여기 조그만 경험이나 지혜이지만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배우는 단서가 되어 지혜에 도달하는 뿌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