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으로 떠돌던 4백 년.
갑작스럽게 여자아이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
눈을 뜨니 동제국의 새 역사가 펼쳐졌다.
반란에 성공한, 곧 황제가 될 여자가.
그리고 난 그녀의 하나뿐인 딸의 몸에 들어왔다고?
하, 이거 참.
두 번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던 동제국 황실의, 그것도 황녀라니……. 최악이다.
그러니 빨리 이 몸으로부터 나가고 싶다.
세계의 규율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라면 제발 나 좀 빼내 줘!
***
“메이 이르텔 리플렌 황녀 전하.”
갑작스런 부름에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니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소년이 있다.
빨리 발을 움직이려던 다짐이 소용없게도 나는 뚝 멈추고 말았다.
소년이 어느새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왔기에.
“룬비나입니다.”
“…….”
“기억하셔야 됩니다.”
기억해 주세요, 같은 상냥한 울림이 아닌 강요적 성격을 띤 명령조의 말.
“다음에 또.”
지나치는 순간, 또렷하게 전하는 소년의 말이 귀에 엉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