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 좋아하죠?"
"참 빨리도 알았네."
얼씨구, 이 인간이 뭘 잘했다고.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미안해해도 어이가 없을 판에 뻣뻣하게 고개를 들어?
"그래서 나보고 헤어져라, 그런 거예요?"
"그래."
"나랑 헤어지면 준수가 그쪽이랑 사귀어 준데요?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보면 몰라?"
아이 씨, 재수 없어. 뭐라고 쏘아대고 싶은데, 솔직히 입이 턱 벌어지게 잘생긴 걸, 못생겼다고 우길 수도 없고, 왠지 지는 기분이다. 이게 아닌데, 나는 여자에다가 여자친구고, 저 사람은 남자인데다가 준수 앞에선 얼굴로 못 내미는 소심한 스토커인데.
"그쪽 남자잖아요."
"근데?"
위협적인 눈빛이었다.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뭐, 그렇다구요."
"멍청이."
피식 비웃은 그가 멀어져 갔다. 백을 고쳐 매면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순간 또 문자가 왔다. 준수에게서. 고맙다고. 그때 그렇게 말한 거 미안하다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의 넓은 등이 왠지 너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냥 막연하게 미안했던 것 같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망설이던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이봐요."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자, 멈칫한 남자가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제법 진지한 눈동자로 응시하다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