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에는 명례궁(明禮宮)이라 호칭한 모양인데, 그 명칭의 유래는 미상(未詳)하나 이로부터는 명례궁(明禮宮)으로 부르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경희궁(慶熙宮)이라 호칭하기는 영조(英祖) 이래의 일로 본래는 경덕궁(慶德宮)이어서 경덕(慶德)이란 궁의 이름이 추존(追尊)한 원종(元宗) 시호(諡號) 고덕(故德)과 같은 음이라고 하여 경덕궁(慶德宮)을 경희궁(慶熙宮)으로 개칭하게 된 것이다. 광해(光海) 때 다시 중건(重建)한 것이 이른바 현존한 종묘(宗廟)의 건물이다. 옛 관우묘(關羽廟)에 봄가을 두 차례 시기로 제전(祭典)을 행할 때 반드시 장신(將臣)(대장)을 명하여 갑주(甲胄)(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의식을 행하였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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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문일평(文一平)(1888~1939) 호 호암(湖岩)
독립운동가, 언론인, 사학자
평북 정주(定州) 출생
송도(松都)고보, 배재고보 교사
정주 오산학교 졸업,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 수학
조선일보 기자
저서 호암전집(湖巖全集), 역사 관련 서적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