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베스트 SF 1위’(『SF가 읽고 싶어!』 선정)에 오른 일본 SF 최고의 화제작. 사랑과 우정을 담아낸 서정적인 이야기들 속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감성 SF. 정식 출간 이전에 이미 중쇄가 결정되고 출간 2주 만에 5쇄라는 기록을 세운, 2019년 일본 SF 최고의 화제작. 평행세계, 인격이식, 싱귤래리티, 대체 역사, 신칸센 저속화 현상 등 SF만의 독특한 설정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탄탄하게 엮이며 고른 완성도를 갖춘 역작들을 선보인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연상시키는 표제작을 비롯해 총 6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정세랑 · 천선란 소설가가 추천사를 썼다.
‘2019 베스트 SF 1위’(『SF가 읽고 싶어!』 선정)에 오른
일본 SF 최고의 화제작.
정식 출간 이전부터 중쇄 결정! 출간 2주 만에 5쇄!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도저히 한 명의 작가가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탁월한 필치와 상상력으로 엮어낸 여섯 편의 작품은 SF를 향한 끝없는 동경이 낳은 기적적인 재능과 만반의 준비가 바탕이 된 놀라운 걸작들이다.” ―이영미(옮긴이)
“한나 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작가다. 데뷔 이래 작품은 중 · 단편에 한정됐고 발표는 주로 동인지를 통해서였지만, 그것이 매번 『연간일본SF걸작선』에 수록되었으니 그의 글에 대한 평가가 높은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SF에 대한 오마주가 넘치는 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틀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꽂히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최신작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부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아사히 신문>
평범한 소녀들의 특별한 연대!
또 다른 나, 또 다른 우리
모든 가능성의 세계를 그리는 SF
“찌는 듯한 더위에 잠이 깨, 커튼을 열고 창밖으로 눈 풍경을 바라보았다”라는 이상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표제작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무한대의 현실’에서 마음에 드는 현실을 선택하여 넘나들 수 있는 세계를 무대로, 평범하지만 특별한 소녀들의 우정과 연대를 그린 작품이다. 무더운 여름 아침이면 폭설이 내리는 세계로, 설교가 시작될 것 같으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세계로, 무한한 평행세계를 매끄럽게 넘나들 수 있는 세계라면 인간관계의 갈등은 제로에 가깝게 줄어들 것이고, 누군가에게 상처 줄 일도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평화롭고 ‘매끄러운 세계’인 것이다.
여고생 하즈키는 불의의 사고로 이 세계의 ‘적’이 된 친구 마코토를 위해, 자신이 매끄럽게 살아가고 있던 그 세계의 적이 되기로 결심한다. ‘매끄러운 세계’는 그 누구도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부드러운 세계인 한편 그 세계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절대 고독으로 내몰 수 있는 잔인한 세계이므로, 마코토에게 내미는 하즈키의 손은 고독한 세계로의 자발적인 연대를 뜻한다.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상대가 다른 세계에서 온 누군가로 교체되는 건 아닐까, 나를 버리고 다른 내가 있는 세계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야 하리라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한 소녀는 다른 소녀를 향해 손을 내민다. 그들이 마주 잡은 두 손의 온기로, 선택지가 없이 고착된 이 세계에서 꿋꿋이 살아가주기를.
시간을 테마로 한 SF 성장소설!
‘이 세계’에 맞서는 용기와 ‘다른 세계’를 꿈꾸는 상상력을 가진 자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진정한 기회를 손에 넣는다!
‘시간물’은 SF의 가장 중요한 제재 중 하나다. 한나 렌의 최신작인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시간지연 현상이 발생한, 다시 말해 저속화된 신칸센을 가정하고 이를 둘러싼 두 가지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첫 번째 의문은 하야키는 ‘왜’ 저속화된 신칸센에 탑승하지 않게 되었는가. 두 번째 의문은 저속화된 신칸센에 갇힌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 첫 번째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에 성장소설의 요소가, 두 번째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에 SF의 요소가 두드러진다. 수학여행에 가지 않아 신칸센에 탑승하지 않게 된 주인공 하야키의 심경과 재난 이후의 사회의 모습을 그리면서, 보도 경쟁, 국민의 관심과 풍화, 사회의 변화가 몇 번이고 언급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실제 재난을 연상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를 개혁하는 주체는 나기하라로 대표되는 단순한 리얼리스트도, 삼촌으로 표현되는 단순한 로맨티스트도 아니다. ‘이 세계’에 맞서는 용기와 ‘다른 세계’를 꿈꾸는 상상력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융합하는 데 성공한 인물, 즉 하야키만이 세계를 바꿀 진정한 기회를 손에 넣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상상의 도피행을 거쳐 ‘이 세계’로 귀환하는 하야키의 실존적 모험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삼촌이 단순한 속물이 아니라 그의 세계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기하라의 진정성 있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접하면서, 사건의 진원이었던 하야키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 변화한다.
한나 렌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때로는 다른 나, 다른 세계라는 가능성에 안이하게 뛰어들어버릴 것 같으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지금의 나와 이 세계를 받아들이기로 단호하게 결심한다. 이런 결말은 무한한 가능성을 인간 앞에 제시하는 SF적 상상력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SF적 상상력을 통해 다른 나, 다른 세계의 가능성에 직면함으로써 그들은 자신과 이 세계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여성 3인방의 SF 문학사>를 그리는 SF!
후지는 그토록 열망하던 시간여행자의 자격을 갖추고,
도미에와 오토라를 다시 만나게 됐을까?
두 번째 단편인 「제로연대의 임계점」은 ‘일본 SF 문학’의 원류를 정리하는 비평 형식의 소설이다. 가공의 일본 SF 역사를 써 내려가면서 그 선조를 여성들로 설정한다.
일본에서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번역 출간된 것이 1879년, H. G. 웰즈의 『타임머신』과 『투명인간』이 소개된 것이 1913년이다. 그사이 해외 SF에 자극을 받아 오시카와 로가 『해저군함』(1900) 같은 모험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SF로 분류되는 소설이 창작되고 전문 잡지까지 만들어지면서 SF의 문단이 형성된 것은 1900년대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20세기의 ‘제로연대’를 일본 SF의 제1세대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그 SF 문학사를 재조명하고 작가와 작품의 영향 관계를 밝히기에는 어려운 점이 너무나 많다. 만약 그런 논픽션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흥미로울까. 그 지적 호기심을 상상력의 힘을 빌려 만족시켜주는 작품이 바로 「제로연대의 임계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오시카와 로가 아니라, 도미에, 후지, 오토라라는 여학교 동급생들이다. 1902년에 나카자이케 도미에가 <여학동붕>이라는 잡지에 『스이바시 동반자살 사건』을 투고한 것이 일본 SF의 효시가 되었고, 도미에, 후지, 오토라가 소설 창작과 비평이라는 자극을 주고받으며 일본 SF 문단이 싹을 띄운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영향을 받았다는 서구 소설들(예를 들어 어빙의 「립 밴 윙클」, 마크 트웨인의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너새니얼 호손의 『일곱 박공의 집』,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을 제외하고는,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소설의 제목과 줄거리, 심지어 후주로 달린 주석까지 모두 창작된 내용이다. 지극히 사실적인 글쓰기로 무장한 이 세계는 완벽한 허구인 것이다.
이 완벽한 ‘가상 문학사’는 허구의 ‘문학사’로 그치지 않는다. 시간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후지와라 가문의 비첩』을 남기고, 도미에와 오토라는 스이바시 다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채 끝나는 이 이야기의 진짜 엔딩은 본문이 아니라 마지막 주석이다. 사라져버린 두 명의 친구/SF 작가들을 “다시 만나려면 세계를 앞당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홀로 남아 생애 70편 이상의 SF를 남긴 후지의 말에 작품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다.
간명하고 분석적인 문체로 허구의 SF 문학사를 그려내고, 그 문학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들을 암시함으로써 이 작품 전체는 SF가 된다. 후지는 그토록 열망하던 시간여행자의 자격을 갖추고, 도미에와 오토라를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