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든 여자든 누구든 떠나겠다는 사람, 붙잡아 본 적 없다.
늘 너 아니어도 괜찮다 흔쾌히 보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잡으려 했다.
하나를 지시하면 셋을 해 오는 비서를 놓칠 순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했고, 수단과 방법이 없으면 만들려고도 했다.
그녀의 의지를 비틀어 꺾고 무릎을 꿇려서라도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려 했다.
말갛게 웃으며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행복하고 싶다고도 했다.
일방적인 지시에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따르기만 하던 홍 비서가
처음으로 저가 원하는 것을 말했다.
차문후 인생 처음으로 욕심을 접었다.
지금까지 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존중과 배려라는 걸 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생에 한 번쯤은 착한 일을 해도 괜찮으니까.
그 상대가 홍 비서이기에 기꺼이 그럴 수 있었다.
연필꽂이의 펜들조차 가지런히 정리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가
개차반 같은 자신의 더러운 성질과 욕을 감내한 시간들을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기 바랐다.
밤낮없이 두더지처럼 땅만 파헤치고 한 층 한 층 높아지는 빌딩을 보며
섹스의 오르가즘보다 더 짜릿한 흥분에 몸을 떠는 변태인 자신을
3년이나 꿋꿋이 견뎌낸 홍 비서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반듯한 성품의 다정한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기분이 왜 이렇게 엿 같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