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鳳山)과 황주(黃州)의 가면무용은 조선 내에서도 유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까지 입으로 퍼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구나의(驅儺儀)가 고려조 초기에는 중국으로 그 원형대로 수입한 것이 명백하다.?또한 그대로 제석(除夕)에는 임금이 거처하는 곳에서 지냈다. 조형미술상으로 특이할 것은 원래 조선의 가면 재료인 박·나무·종이(평면이나 지면에 그린 것)의 세 가지 종류에 지나지 못하였다.?조선은 옛날부터 타국인보다는 가무(歌舞)를 즐긴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산예(?猊)*라는 명목의 향악(鄕樂)이 있는데, 이는 현재의 사자무로서 조선말 ‘사자춤’이라고 불러 전하던 무용이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