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이 집요하게 추격해온
1993~2019 봉준호 영화의 모든 것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개 부문 석권. 간출한 설명만으로 전 세계를 매혹한 봉준호의 쾌거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봉월드’라는 별칭대로, 감독 봉준호가 쌓아올린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두고 유수의 평단으로부터 찬사가 쏟아졌고 무수한 해석이 있어왔다. 그러나 여기 봉준호의 영화를 ‘세계’가 아닌 ‘언어’로 다가서보는 시도가 있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의 저자 이상용은 봉준호의 성과가 “상업적인 성공이나 명성과는 다른,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일”임에 주목한다. 영화평론가로서 보고 읽고 썼으며,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한국 영화를 지키고 알리는 데 힘써온 그다.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비평을 시작한 이래, 20년이 훌쩍 넘도록 멈추지 않는 ‘씀’으로 달려왔으나, 그는 “영화비평이나 영화에 관한 책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성실한 관객이자 독자로서 ‘충분한 사랑’이란 없다는 것, 영화를 향한 고백이자 애정 어린 당부다.
<백색인>(1993)부터 <기생충>까지, 7개의 장편과 5개의 단편영화 전작을 다루었다. 봉준호의 출발부터 지금에 이르는 ‘근본적인 계획’, 그 청사진이자 지도를 그려낸다. 개별 작품 분석을 넘어 편지, 추격전, 보는 것, 괴물 등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언어들을 중심으로 모든 영화가 끈을 잇고 얽히며 모여들도록 이끈다. 각각의 키워드를 표제어라 할 때, 이 책은 봉준호라는 언어를 탐구하는, 개념은 물론 용례에도 충실한 ‘언어 사전’이라 부름직하다.
봉준호에게 영화 인생의 변곡점이라 할 영화 동아리 ‘노란 문’은 사무실 출입문이 노란색임에 착안,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는 동아리를 만들자’는 작정에서 이름을 따왔다. 「작가의 말」에서 밝힌 바, 『봉준호의 영화 언어』 역시 “하나의 영화 언어를 추구하는 한 감독을 따라가고자 하는 비평의 언어다”. 본문에서 자크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를 빌려 편지(letter)를 문자(letter), 곧 언어(letter)와 권력의 관계로 풀어내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닐 터다. 책의 제목 『봉준호의 영화 언어』 그대로, 독자는 봉준호라는 하나의 독자적인 언어로 들어서는 ‘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문을 통해 존 포드와 히치콕의 영화는 물론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미셸 푸코의 철학, 보르헤스, 보카치오,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활용되고 인용되는 언어의 세계가 펼쳐진다.
저자는 봉준호의 영화에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닮아 있음에 주목했다. 20년 넘게 그의 영화를 집요하게 추격해온 비평가 역시 봉준호의 방식을 글 속에 끌어들인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가 하나의 언어로서 봉준호를 다룰 때, 이를 읽고 듣고 이해하는 청자는 곧 봉준호의 언어를 구사하는 화자인 셈이다. 다채로운 인용과 이를 한 방향으로 그러모으는 구조의 탁월함에서 우리는 ‘봉준호의 언어로 쓰인 봉준호’를 본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언어 봉준호’에 입문하는 사전이자 가이드북, 실용회화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