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 The Brothers Karamazov)(1880)는 러시아 메신저(The Russian Messenger)(1879~1880)를 통해 연재한 작품으로 그의 5대 장편(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집필한 작품입니다. 그의 문학적 역량이 최고도에 달했을 때 완성한 최고의 작품이자, 숨을 거두기 4개월 전에 완성한 유작(遺作)입니다. 작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 The Brothers Karamazov)(1880)를 본디 3부작으로 계획하였으나, 1부만을 완성하고 사망함으로써 부득이하게 완성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완성 소설’ 중 하나이자 존속살해란 인간의 금기를 소재로 다룬 소설 중 가장 유명한 소설일 것입니다.
제목 그대로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Fyodor Pavlovich Karamazov)와 그의 맏아들 드리트리(Dmitri Fyodorovich Karamazov), 둘째 아들 이반(Ivan Fyodorovich Karamazov), 셋째 아들 알렉세이(Alexei Fyodorovich Karamazov)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카라마조프(Karamazov) 가문의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 스베틀로바(Agrafena Alexandrovna Svetlova)에게 반해 아버지와 경쟁하는 장남, 형의 약혼자 카테리나(Katerina Ivanovna Verkhovtseva)를 사랑하는 이남, 인간에 대한 끊없는 애정을 품은 삼남에 아버지의 사생아 스메르자코프(Pavel Fyodorovich Smerdyakov)까지... 얽히고 설킨 인간 군상이 삶과 종교, 인간과 인간, 인간의 내면에서 고뇌하고 고통받는 과정이 방대한 서사시로 펼쳐집니다. 번외적으로 셋째 아들 알렉세이(Alexei Fyodorovich Karamazov)는 작가가 잃은 어린 아들의 이름 알료샤(Alyosha)를 붙인 것으로,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자 구원자로 그려집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The world says: "You have needs -- satisfy them. You have as much right as the rich and the mighty. Don't hesitate to satisfy your needs; indeed, expand your needs and demand more." This is the worldly doctrine of today. And they believe that this is freedom. The result for the rich is isolation and suicide, for the poor, envy and murder.” "세상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필요는 있습니다. 그들을 만족시키십시오. 당신은 부자와 강자만큼이나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요구 사항을 충족하십시오. 실제로 요구 사항을 확장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시오. 이것이 오늘날의 세속적인 교리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이 자유라고 믿습니다. 부자들의 결과는 고립과 자살, 가난과 시기, 그리고 살인입니다.”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Crime and Punishment)(1867)의 배경,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는 실제로 작가가 가장 오래 머물며 집필한 도시입니다. Vladimirskaya(Владимирская) 지하철역 바로 앞에 그의 동상과 박물관이 있으며,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장소가 밀집해 있어 세계 각지의 문학기행자들이 즐겨 찾는 ‘문학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재정적인 문제로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 거주하는 동안 무려 스무 번 이상 옮겨 다녔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Dostoevsky Museum, Музей Ф. М. Достоевского)은 그가 가족과 함께 머물렀을 뿐 아니라, 그가 숨을 거둔 공간에 마련되었습니다. ‘오후 8시 36분’에 멈춰진 시계가 있는 방이 바로 그가 집필에 몰두하던 서재입니다. 2021년은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입니다. 이를 기념해 주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관의 지원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 한국어 가이드가 설치되었습니다.
“I used to analyze myself down to the last thread, used to compare myself with others, recalled all the smallest glances, smiles and words of those to whom I’d tried to be frank, interpreted everything in a bad light, laughed viciously at my attempts ‘to be like the rest’ ?and suddenly, in the midst of my laughing, I’d give way to sadness, fall into ludicrous despondency and once again start the whole process all over again ? in short, I went round and round like a squirrel on a wheel.” "저는 제 자신을 마지막 실타래까지 분석하고, 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제가 솔직해지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사소한 눈길, 미소, 그리고 말들을 떠올리고, 모든 것을 나쁜 시각으로 해석하고, '나머지처럼 되려고' 하는 제 시도를 악랄하게 웃곤 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제 웃음 속에서, 슬픔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허탈감에 다시 한 번 모든 과정을 다시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저는 바퀴 달린 다람쥐처럼 빙빙 돌았습니다.”
페트라셰프스키 서클(Petrashevsky Circle)(1847~1849) : 미하일 페트라셰프스키(Mikhail Petrashevsky)(1821~1866)가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의 집에서 매주 개최한 문학 토론 모임으로,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당대의 젊고 야심만만한 자유주의 지식인(liberal intellectuals) - 공무원, 군인, 작가, 교사, 학생 등이 모여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당시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 참가한 이들로는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해 시인 아폴론 마이코프(Apollo Maikov), 우크라이나 태생의 작가 겸 화가 타라스 흐리호로비치 셰우첸코(Тарас Григорович Шевченко), 시인 알렉세이 플레셰프(Alexei Pleschev) 등의 저명인사가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2월 혁명(February Revolution)(1848)을 지켜본 러시아 제국의 황제 입장에서 ‘불온한 정치세력’의 잦은 회동은 마뜩치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니콜라이 1세 파블로비치(Николай I Павлович)는 그들의 행보를 면밀히 감시하였고 결국 불온문서를 돌려 읽은 것을 꼬투리 잡아 1849년 일제히 참가자들을 체포하였습니다. 4개월간의 혹독한 심문 끝에 전원에게 총살형을 선고하였습니다. 불과 28세의 나이에, 사형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도스토옙스키가 당시의 충격을 바탕으로 죽음의 집의 기록(Записки из Мёртвого дома)(1860~1862)과 백치(Идиот, The Idiot)(1869)를 집필한 것은 그의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후 시베리아 남서쪽에 위치한 옴스크주로 이송(1850)되어 4년간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당시 접한 실존 인물의 이야기는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Crime and Punishment)(1867)의 모티브가 됩니다. 출소 후에는 세미팔란치스크(Семипалатинск, Semipalatinsk)에서 6년간 복무하였습니다. 그가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로 돌아온 것은 1859년으로, 페트라셰프스키 서클(Petrashevsky Circle)(1847~1849)로 떠난지 무려 10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잃은 것도 적지 않지만, 그가 겪은 고난과 역정은 작가로써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고 특히 마리아 드미트리예브나 이사예바(Мария Дмитриевна Исаева)(1824~1864)를 만나 결혼(1857)함으로써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Above all, don't lie to yourself. The man who lies to himself and listens to his own lie comes to a point that he cannot distinguish the truth within him, or around him, and so loses all respect for himself and for others. And having no respect he ceases to love.”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세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거짓말을 듣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이나 주변의 진실을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므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모든 존경심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존경심이 없는 이는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