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화유산과 오랜 삶의 흔적을 따라가는 골목 여행
<도서 소개>
아련하고 아릿한 근대의 흔적을 따라 하루에 백 년을 걷다
세상살이 안목을 키우는 의미 있는 여행의 시작
도심 속 근대 문화유산을 따라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한국의 공예 무형문화재, 전국의 시장을 직접 취재하고 고스란히 기록해온 서진영 작가. 이번에도 우리 문화의 가치를 온전히 보여주고자, 서울에서 제주까지 백 년의 시간을 간직한 골목을 걸으며 그 길이 품은 시간들을 돌아본다. 근대의 영광과 생채기가 깃든 서울의 정동, 대전의 기찻길 옆 소제동, 벚꽃비에 감춰졌던 진해의 중앙동, 근대의 흔적이 의외의 모습으로 느껴진 광주 양림동 등 근현대의 역사를 품은 21곳의 골목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뜻밖의 하루를 선물한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 변함없이 백 년의 시간을 지켜온 건물들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과거임과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역사다. 아름다운 풍경, 아련하고 조금은 빛바랜 건물들을 따라가는 여정은 동시에 우리의 부모들이 살아온 시간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빌딩에 둘러싸인 이국적인 성당, 새롭게 단장한 기차역 옆 오밀조밀한 낮은 지붕들과 같이, 여정을 함께한 임승수 작가의 사진을 보며 가뿐히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다 역사가 남긴 일본식 건물과 뚜렷한 총탄 자국 앞에서는 마음 한 곳이 아릿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담아낸 글과 사진은 근대의 유산으로 시작해 어느덧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하루에 백 년을 걷는 묘한 경험을 하며 지금 내가 어느 시간 속에 서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의외의 과정을 선사한다.
<출판사 서평>
무심코 지나친 건물에 깃든 오랜 역사
도심 속 등록문화재를 따라 걷다
도심 속에 우뚝 선 서양식 이층집과 어딘가 빛바랜 간판을 달고 위엄을 뽐내는 상점들. 요즘 유행하는 ‘빈티지’나 ‘레트로’ 콘셉트를 흉내 냈나 싶지만 어엿한 문화재다.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는 근현대의 건축물이나 기념물이 현재 등록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보존할 필요도 있고 활용 가치가 큰데도 연대가 그리 유구하지 않아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것들이다. 새롭게 단장한 기차역과 신식 건물들 사이에서 모두가 무심히 지나치는 오래된 건물들은 왜, 어떻게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게 된 걸까.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도시의 풍경과 사라지는 건물에는 우리의 지난 시간과 역사가 묻어 있다. 당장 먹고사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이런 이야기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지마는, 알고 보면 그리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등록문화재를 따라 걷는 하루는 길어야 백 년 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가 살아온 시간들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여행의 기준점을 등록문화재로 삼은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과거이자 역사인 근대의 흔적을 좇아, 역사라는 다소 무겁고 때로는 논쟁이 되는 이야기들을 삶과 가까이 가져오려는 노력이다.
이 책에서는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품고 고요히 자리를 지키는 골목을 걷는다. 언제든 여행객이 붐비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부터 여행지로는 다소 낯선 나주, 강경의 구석구석까지. 전국의 21개 골목을 다니며 평소라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건물을 돌아보고 만져보고, 품은 이야기를 톺아보며 하루에 백 년이라는 시간을 단숨에 통과한다. 그 시간을 통해 내것이 아닌 듯했던 역사에 가깝게 다가가며, 때로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듯 아름답고 생생한 근대 건축물
풍경과 문화재를 사진으로 담아내다
한결같이 네모반듯한 아파트,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높은 빌딩들에 둘러싸여 매일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획일화된 건물 사이에서 근대의 건축물들은 뜻깊은 역사만큼이나 비주얼도 독특하고 의미 있다. 백화점과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있지만 고딕 양식 성당의 첨탑은 고고하게 솟아올라 있고,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오색찬란하게 빛난다. 마치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는 듯한 풍경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마음에 평화가 몰려오기도 한다.
하루에 백 년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풍경과 건물을 사진으로 보는 것은 서진영 작가의 여정을 글로 따라가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와 여운을 안겨준다. 봄볕을 쬐는 지붕은 아련하고 건물의 낡은 흔적마저 여름엔 싱그럽다. 가을 노을에는 진한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고 새파란 겨울 하늘은 오래된 건물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임승수 사진작가는 21곳의 골목을 걸으며 가장 어울리는 계절을 배경 삼아 골목 풍경과 문화재를 사진으로 담았다. 위풍당당한 벽돌집, 다닥다닥 붙은 주택, 이국적인 모습의 성당 등 시원스런 사진들이 이야기에 생기를 더한다.
푸른 제주 대정읍의 들판 위로 불쑥 솟은 일제의 비행기 격납고, 백범 김구 선생의 마지막 순간을 짐작하게 만드는 서울 경교장 유리창의 총탄 자국은 괜스레 마음 한 곳을 아릿하게 한다. 그러다 이내 진주의 야경과 노을 내린 춘천 소양강 처녀상에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난 시간을 아련하고도 아름답게 담아낸 사진 덕분에 이 책을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걷고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 한 권 들고 홀로 떠나는 여행
기차역에서부터 자박자박 거꾸로 걷는 백 년의 시간
등록문화재를 따라 걷는 이 책의 여행은 대부분 기차역에서 시작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국내여행으로 관심을 돌리는 요즘, 무엇보다 의미 있는 여행의 출발이다. 뻔하고 요란한 인기 관광지보다 가만히 거닐며 생각할 수 있는 공간들을 걸으며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보게 만든다.
역사적 사실들을 몰라도 좋다. 혼자 떠나고 싶을 때,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기차역에 내려 근대의 시간을 함께 걸어보길 추천한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과거이자 역사인 근대. 그 백 년의 시간을 조용히 견딘 문화재와 삶의 흔적을 따라 백 년 전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서 왔고,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조용히 떠올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P.34 기계음 하나 없이 이어폰을 통하지 않고 듣는 노래는 참 오랜만이라 벤치에 앉아 한참 감상하는데 이내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낯선 얼굴임에도 저희들보다 어른이다 싶은지 깔깔거리다 말고 줄줄이 인사를 한다. 봄 햇살보다 말간 얼굴을 하고서. 비로소 실감이 난다. 빼앗긴 땅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때에 배움이 당연시 여겨지지 않던 이들에게 선교사들의 땀방울이 어떤 희망을 싹틔웠는지.
〈광주 양림동〉
P.43 “저게 관사라고? 허, 난 여태 몰랐네. 그렇잖아도 사진기 들고 많이들 오드라고.” 약주를 들이켠 어르신이 혼잣말을 했다. 어쩌면 근대 유산이니 뭐니 하는 것은 지금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성가신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 탓에 기록이랍시고 기웃거리는 것이 늘 조심스러운데 흐르는 세월에 어르신들은 오히려 너그럽다.
〈대전 소제동〉
P.75 목포만큼 날것의 느낌이 충만한 도시가 또 있을까. 그 살아 있는 기운으로 숱한 드라마를 써내려간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항구, 목포. 부산과 원산 그리고 인천에 이어 일제에 의해 1897년 10월 1일 개항된 목포는 이내 짙푸른 앞바다를 메워 근대적 도시로 단장하게 되지만 당시에는 우리 몫이 될 수 없는 땅이기도 했다.
〈목포 유달산 아래〉
P.113 유명 관광지가 되면서 음식점, 카페, 노점 등이 어지럽게 들어서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허울 좋게 꾸민 보여주기 식의 한옥이 아니라 주인은 바뀌어도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고 지난 한 세기를 살아온 한옥이 여전히 특유의 빛깔을 자랑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는 결국 각자의 눈에, 각자의 마음에 달린 것 아니겠는가.
〈전주 천변〉
P.153 제주는 분명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제주를 걷다 보면 알게 된다.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섬이 아니란 것을. 돌과 바람, 신들의 나라 제주에는 얼마간 서늘함이 깃들어 있다. 제주 섬 끄트머리 마라도행 여객선이 드나드는 모슬포 언저리에는 더더욱. 쾌청한 바다와 아스라한 청보리 물결 너머로 선혈 머금은 아릿한 시간이 일렁이고 있다.
〈제주 모슬포〉
P.197 틀림없는 공식처럼 ‘경주=신라’라고 단정했던 내 무심함에 몹시 무안했다. 신라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고도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경주역 중심으로 역사 담장을 에두른 마을과 역전 대로에서 가지 친 골목을 걸으며 현재와 그리 멀지 않은 근대기의 지층을 마주한 데 대한 놀라움이 큰 탓이다.
〈경주 역전〉
P.251 그날 김구 선생이 앉아 있었던 2층 창가, 창문에 난 총탄 자국이 선생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다. 깨진 것은 유리창만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던 김구 선생의 바람과 함께 툴로 나뉜 나라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 또한 깨졌다. 서글프고 쓰라린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는 것이 기꺼울 리 없지만 잊어서는 안 될 일임은 분명하다.
〈서울 교남동〉
P.287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 전혀 관계없을 것만 같은 지난 시간의 흔적이지만 정동길 구석구석에 고개 내민 이야기들을 더듬으면서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먼 훗날에 누군가가 이 거리를 걸으며 오늘의 우리를 기억해주지 않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길은 사라질 뿐이니 이 땅과 이 거리 그리고 그 위를 내딛고 있는 우리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근현대의 희로애락이 배인 골목골목을 걸으며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서울 정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