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연대기(A Journal of the Plague Year)(1722) : 판데믹(pandemic)이란 초유의 대재난을 겪고 있는 2021년이기에 삼백년 전 흑사병에 맞선 영국 런던의 상황을 그려낸 대니얼 디포의 전염병 연대기(A Journal of the Plague Year)(1722)는 우리의 현재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국 천문학자 마운더는 1650년~1700년경 태양의 상대 흑점수가 비정상적으로 감소한 것을 발견해 이를 마운더 극소기(Maunder Minimum)라 명명하였습니다. 이 시기 지구 전역에서 한파가 불어 닥쳤고, 이는 흉작을, 다시 기근을, 그리고 전염병이란 후폭풍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영국 런던 대역병(Great Plague of London)(1665~1666)과 ‘조선 역사상 최악의 기근’ 경신 대기근(庚辛大飢饉)(1670~1671)이 비슷한 시기에 닥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돌이켜 보면 사스(SARS coronavirus, SARS-CoV)(2002~2003), , 서아프리카 에볼라(Ebola hemorrhagic fever; EHF)(2014),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2015) 등 전염병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각 국가의 정부의 지휘 체계, 시민들의 협조, 백신의 개발과 공급 등에는 상이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염병 연대기(A Journal of the Plague Year)(1722)는 소설의 형식을 빌리긴 하였으나, 1664년 흑사병이 도는 와중에도 런던이란 심장을 멈추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각계각층의 노력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 ‘현장 르포’입니다. 페스트의 발발부터 시정부의 긴밀한 대처, 그리고 시민들의 절망과 분노가 시간 순서대로 묘사되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긴박감을 자아냅니다. 특히 부상자의 수를 비롯해 실제 사건이 진행된 공간을 꼼꼼히 취재하여 그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동시대 사무엘 페피스(Samuel Pepys)가 남긴 일기보다 한 차원 높은 기록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1719)의 명성이 무색하게, 다작작가 대니얼 디포의 책은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만, 다행히 전염병 연대기(A Journal of the Plague Year)(1722)는 한국어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세계 최초의 언론 기사(one of the world's first examples of modern journalism)(1703) : 석방된 디포는 공교롭게도 1703년 런던과 브리스톨을 강타한 대폭풍(Great storm of 1703)을 직접 목도하였고, 이를 이듬해 현대적인 보도를 위한 모델로서의 디포의 폭풍(Defoe's The Storm as a Model for Contemporary Reporting)이란 제목으로 발표하습니다. 이는 현대적인 저널리즘의 세계 최초의 언론 기사(one of the world's first examples of modern journalism)로 간주됩니다. 즉 디포는 현대적인 보도 기자의 원조인 셈이지요!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1719)로 명성을 얻은 후에 출간한 전염병 연대기(A Journal of the Plague Year)(1722) 또한 소설과 현장 취재에 기반을 둔 기사의 절묘한 결합으로, 기자와 소설가를 모두 아우르는 ‘디포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로빈슨이 3부작이라고?!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1719) :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1719)는 소설가보다 무역업자 겸 언론인으로 더욱 유명한 디포를 하루아침에 ‘스타 작가’로 만들어준 베스트셀러입니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로빈슨 크루소가 다시 섬으로 돌아간 후 마다가스카르, 동남아시아, 중국 그리고 시베리아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오는 10년 9개월간의 세계 여행기를 다룬 2부 The Farther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와 종교와 신앙에 관한 글을 엮은 3부 Serious Reflections During the Life and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까지 집필하였습니다. 불과 2년(1719~1720) 사이에 3부작을 집필하였으니, 당시 디포가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는 다작작가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자도 제목을 못 외운다?! 문장형 제목 소설 :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1719)는 원제가 무척이나 긴~ 문장형 제목 소설로도 유명합니다. 이는 당대 소설 제목의 관행으로, 제목만 읽어도 독자가 어떤 내용의 소설이겠구나~ 손쉽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길어도 너무 길다는 단점이 있지요. The Life and Strange Surpriz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Mariner: Who lived Eight and Twenty Years, all alone in an un-inhabited Island on the Coast of America, near the Mouth of the Great River of Oroonoque; Having been cast on Shore by Shipwreck, wherein all the Men perished but himself. With An Account how he was at last as strangely deliver'd by Pyrates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 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가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
로빈슨 크루소의 실제 모델, 알렉산더 셀커크(Alexander Selkirk)(1676~1721) : 스코틀랜드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Alexander Selkirk)(1676~1721)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난자’일 것입니다. 그는 1704년부터 칠레 서쪽에 위치한 후안페르난데스 제도(Juan Fernandez Islands)의 마샤 티에라 섬(Mas a Tierra)에서 무려 4년간 홀로 생존하였습니다. 1809년 4년 4개월 만에 영국 듀크호(Duke)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디포가 그의 행적에 감명을 받아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난소설’일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1719)를 썼고, 작품의 인기와 함께 그의 이름 또한 널리 알려졌으며,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칠레 정부는 마샤 티에라 섬(Mas a Tierra)의 이름을 1966년 로빈슨 크루소 섬(Isla Robinson Crusoe)이라고 개명하였으며, 로빈슨 크루소 섬(Isla Robinson Crusoe) 서편의 작은 섬 또한 알레한드로 셀커크 섬(Isla Alejandro Selkirk)이라 명명되었습니다. 현재는 인구 800 ~ 900여명의 유인도로 개발되었습니다.
알렉산더 셀커크(Alexander Selkirk)(1676~1721)의 실제 삶은 로빈슨 크루소와 비슷하지만, 다른 면도 많습니다. 일단 그는 해적이며, 소설과 달리 난파가 아니라, 당시 항해를 주장한 선장에 맞서 Cinque Ports 호가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자발적으로 하선하였습니다. 실제로 Cinque Ports 호는 Malpelo Island(Isla de Malpelo)에서 운항을 멈췄고, 생존자들은 포로로 잡혔으니, 셀커크의 판단이 옳은 셈입니다. 선박 수리를 위해 잠시 정박한 마샤 티에라 섬(Mas a Tierra)은 비록 무인도이지만, 염소가 풍부해 주로 염소를 잡아먹으며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조난 기간 또한 4년 4개월로 소설의 28년과는 큰 차이가 있죠. 영국으로 귀향한 셀커크는 여느 탐험가 못지않은 유명인사로 명성을 떨쳤으나, 로빈슨과 마찬가지로 방랑벽을 참지 못하고 다시 항해를 떠났고 바다에서 잠들었습니다.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Scotland)에서는 그의 출생지 로우어 라르고(Lower Largo) 항구에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섬은 오리노코 강(Rio Orinoco) 하구의 트리니다드 섬(Trinidad) 인근이라는 점에서 같은 ‘남미 인근의 섬’이기는 하지만, 위치 자체가 상이합니다. 소설 초판에 그려진 그림에서 로빈슨은 두툼한 염소 가죽을 걸치고 있는데, 이는 중위도인 트리니다드 섬(Trinidad)에서는 무척 더운 복장으로, 디포가 그의 조난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뚜렷한 증거입니다. 디포 외에도 ‘셀커크의 조난기’는 이후, 아니 현대에까지 수많은 문인들에게 영감을 선사하고 있으며, 이는 로빈슨 크루소 이후 로빈소네이드(Robinsonade)란 하나의 장르로 발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