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이라는 기호 안에 ‘호구’가 숨어 있다면
나쁨이라는 기호 안에 ‘무엇’이 숨어 있을까?
여기 디자이너로서, 교수로서, 회사 대표로 살아오면서 종종 호구라 불린 석중휘라는 한 남자가 있다. 『호구의 사회학』의 저자다. 그는 그림에 재능이 있던 친구들이, 또 그들이 그렸던 그림들이 부러워, 그들과 같아지고 싶어, 디자인에 도전했고 성격이 꼼꼼하다는 이유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 그 업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해서,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 바닥을 누비며 느꼈던 무언가는 ‘갑’과 ‘을’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고, 착하고 일 잘하고,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을 가졌다면 종종 ‘호구’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내 것(디자인)을 가져가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주지 않는 것은 경우도 흔한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 즉 배려를 배신으로 갚는 사람들은 어떤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칭찬을 잘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보이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쉽게 표현하는데, 대가를 지불할 때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연락이 두절된다. 그래도 『호구의 사회학』의 저자는 나름 경험을 통해 짐짓 모른 척하며 과감하게 자신의 것을 포기한다. 하지만 ‘착함’이라는 틀을 가지고 종종 호구로 불린 이 남자도 역시 사람인지라…….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선(線)’을 넘으면 어떻게 될까? 그럼 ‘나쁨’이라는 틀을 짊어져야 할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익숙함’과 ‘새로움’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어 하는 ‘호구’ 또는‘을’이라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호구의 사회학』에 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의미 파악’이란 걸 잘해야 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하지 못한다고, 세상살이가 무조건 고달픈 것은 아니다,
단지 당신은 호구의 범주 안에 들 뿐이다
사전에 따른 호구의 기본 의미는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지경이나 경우를 말한다. 또 하나의 의미는 바둑 용어로, 바둑돌 석 점의 같은 색 돌로 둘러싸이고 한쪽만 트인 눈의 자리를 말하는데 이 속에 돌을 두면 당연히 돌을 뺏기는 것으로, 이를 호구짓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호구’라는 단어는 바둑 용어에서 나온 말로,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뜻한다. 호구에겐 갖춰야 할 기본자세가 있다. 거절을 잘 못하고, 나름 착하고, 나름 일을 잘해야 하고, 나름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베풀어야 한다. 다만 눈치가 없어서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못한다. 복잡해진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의미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옴팡 뒤집어쓰는 것뿐이다. 데카르트의 추론을 통해 결론을 낸다면 ‘호구’는 분명 좋은 사람이다. 자기계발서에서 흔하게 부르짖는 ‘배려’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착한 사람을 이용하지 못해, 뒤통수를 치지 못해, 안달이 나는 걸까? 그 이유는? 내 삶을 위해, 아니 나름 살기 위해 누군가를 만났고, 누군가에게 부탁했는데 그 부탁의 대가를 챙겨주기엔 내 삶이 더 먼저였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재빠르게 알아챈 것은 아니었는지. 「호구의 사회학」은 호구라는 범주 안에 몰린 사람들, 자기계발서를 통해 ‘호구’라는 타이틀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호구’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 말고, 그 이면에 숨은 심리를 파악해 나름 세상의 한 축을 이어나가는 ‘줄’로 살아보자고 말한다. 물론 이 역변하는 세상에서 ‘호구’라는 캐릭터도 있어야 세상이 스멀스멀하게 넘어갈 수 있지 않겠냐는 반문도 한다.
기호(記號)와 기호(嗜好) 사이의 간극을 알면
세상 보는 ‘선(線)’이 달라진다
세상엔 늘 ‘선(線)’이라는 것이 있다. 또한 기호(記號)와 기호(嗜好)가 있다. 우리는 나름 경험과 교육을 통해 이 ‘선’의 높낮이를 정하고, 그 변주에 따라 서로의 삶들을 재단한다. 그리고 기호와 기호 사이의 숨은 사인을 분별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종종 그 재단이 모호해질 때가 있다. 특히 창작이라는 범위 안에선,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디자인의 범위 안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속고 속임이 행해진다. 물론 그것을 용인하며 얻은 성장이라는 열매 또한 존재한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만났던 그때였나?
한창 모더니즘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신에게 되돌려 받았던 자유를 찾기 위해 신드롬처럼 모더니즘이 불어닥쳤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삶의 의미가 되어주지 못하자, 누군가가 반항을 하기 시작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불었다. 진실은 흔들렸고, 문화는 부서졌다. 그리고 B급 문화가 붐을 이뤘다. 그것은 홍콩 영화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결과 장국영은 초콜릿 광고로, 주윤발은 음료수 광고로 텔레비전을 통해 우리와 만났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즐기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진국의 바람은 아니었으니까. 경시하는 ‘B급’을 즐기면서도 우리는 ‘A급’을 원했다. 그리고 우리는 ‘A급’이 될 것이라고 우리 자신을 드높였다. 특히 당시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은 「영구와 땡칠이」를 연출한, ‘B급’이라고 치부되었던 남기남 감독에게 쏟아부었던 이중 잣대가 대표적이다. 디자이너로서, 교수로서의 타이틀을 쥐고 종종 ‘호구’라 불린 석중휘라는 한 남자가, 왜 우리가 우리에게 씌운 이중 잣대가 필요했는지, 세상이 존재하는 ‘선’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 그 안에서 ‘호구’가 어떻게 생기는지, 그 원인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책이 「호구의 사회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