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 조선의 586

유성운 | 이다미디어 | 2021년 06월 28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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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누가 대한민국을 ‘후조선’으로 만들었는가?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후조선’을 살고 있다는 체념어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분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부와 학벌과 계급이 세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명분과 도덕을 앞세워 집권한 뒤 현실을 외면하고 실리는 챙기지 못하는 현 집권층에 대한 경고와 분노다.
일본 앞에서는 너무나 당당하면서 중국 앞에서는 움츠러들고, 각종 규제로 꽁꽁 묶어 집값을 폭등시키고, 가붕개로 만족하고 살자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화려한 스펙을 쌓아주기 바쁜 그들을 보면서 조선의 무능한 양반 지배층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차별화했지만, 조선을 성리학 세계로 바꿔놓은 뒤에는 자신들만의 특권과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중화주의에 빠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상업을 죄악시하며 나라 전체를 가난하게 만들고, 무인을 천시해 국방을 약화시키고,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노비는 늘리고, 자신들의 특권을 대대로 보장해줄 ‘성스러운’ 족보 만들기에 골몰했다.
하지만 조선이 처음부터 이런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조선 초기는 신분제도 느슨했고, 여성의 재혼도 인정했으며, 국방력을 중시했던 역동적인 시대였다. 그랬던 조선을 바꿔놓은 것은 사림이다.
《소학》의 가르침을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원리주의자 사림 세력은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를 성리학의 종주로 만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후 정계 주도권을 장악한 사림은 실력이 아니라 절의를 기준으로 세워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은 ‘소인’이나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였다. 또한 ‘중화(中華)’를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 망한 명나라의 복수를 해야 한다며 나라 전체를 이념화, 교조화시켰다.

조선 사림의 위선과 대한민국 586의 내로남불

조선 사림이 수양대군의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에 분노하고, 기묘사화라는 탄압을 통해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고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586은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에 분노하고, 5.18과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명분을 얻고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 등 재야 세력을 복권시키고 국가적 공인을 받기 위해 투쟁했던 사림은 정권을 잡은 뒤엔 자신들만 ‘정의로운 세력’이고 건국에 참여한 세력은 ‘불의한 세력’으로 끌어내렸다. 586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인사들을 ‘항일민족주의자’로 평가하고, 건국에 참여한 이들은 ‘친일친미반민족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조선 초기 공신들의 부패와 탐욕을 성토했던 사림은 집권 후에 그에 못지않은 특권을 향유했고, 자신들의 불의와 영달에 대한 지적에는 “예전에도 그랬다”라고 변명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다의 청문보고서 없는 임명 강행과 4대강보다 많은 가덕도신공항 예산을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집권 이후 정의와 도덕을 독점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이 책은 사림이 정치 세력으로 대두하는 과정과 집권 후 조선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여주면서 586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짚고 있다. 마치 둘로 쪼개진 거울을 하나로 맞추는 것 같은 유사한 흐름을 보면서 지금 우리 앞에 ‘후조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다.
실력보다 계보를 따지고, 집권자에게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윽박지르고,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무덤을 찾아 ‘계승’을 맹세하고, 중화주의에 쩔쩔매는 조선의 잔재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조선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는 민주공화정으로서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저자소개

유성운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정치부-사회부를 거쳤다. 대학원까지 역사 공부를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기자 생활 15년의 절반을 정치부에서만 보냈다. 뒤늦게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마음을 바꾸어서 기후환경학을 공부했다.
정치부와 문화부를 거치며 〈중앙일보〉 지면과 온라인에 ‘유성운의 역사정치’, ‘역(歷)발상’, ‘역지사지’ 등 역사 관련 칼럼을 연재했다.
《사림, 조선의 586》,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을 펴냈고, 《고지도로 보는 유토피아 상식도감》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소개

추천의 글 한국의 586, 조선 사림의 귀환
프롤로그 누가 대한민국을 ‘후조선’으로 만들었나?

1장 성리학과 사림의 탄생
1519년 11월의 밤, 기묘사화의 서막 ┃ 조광조를 우두머리로 하라 ┃ 조선, 사림이 만든 나라 ┃ 훈구와 사림의 배경에 차이는 없다 ┃ 《소학》과 《해전사》, 이념의 전사를 만들다 ┃ 성리학의 이상 국가를 꿈꾼 사림들 ┃ 성종과 중종 때 완성된 성리학 질서 ┃ 계유정난은 사대부들에게 큰 충격 ┃ 성종 대 사림의 정계 진출 ┃ 중종시대에 사림의 복권 ┃ 사림의 총아 조광조의 등장 ┃ 기묘사림은 조선의 0.1% 특권층 ┃ ‘현량과’를 설치한 조광조의 목적 ┃ ‘현량과’를 둘러싼 훈구와 사림의 대립┃ 뜻이 같으면 천거, 뜻이 다르면 배척

2장 도덕주의 사림의 계보학
실력보다 족보가 더 중요하다! ┃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 성리학 계보를 집대성한 주희 ┃ 조선 최초 도통에 거론된 권근 ┃ 조선 성리학의 기틀을 다진 권근 ┃ 태종이 정몽주 복권을 결정 ┃ 권근의 패배, 정몽주의 승리 ┃ 역사의 패자가 된 대한민국 건국 세력 ┃ 친일파로 전락한 인촌 김성수 ┃586 세력의 김원봉 영웅 만들기 ┃ 조선 창건을 막은 정몽주가 적통 ┃ 중종 12년 여름 ① - 김굉필의 등장 ┃ 중종 12년 여름 ② - 사림의 승리 ┃ 선조와 사림의 문묘 종사 공방 ┃ 광해군 때 5현의 문묘 종사 확정

3장 사림의 위선, 586의 내로남불
20년 유배된 유희춘의 인생 역전 ┃ 사림이 보여준 축재의 카르텔 ┃ 586이 받은 민주화운동의 보상 ┃ 인간의 도리를 말하며 노비는 늘렸다 ┃ 정약용도 공노비 해방을 비판 ┃ ‘열녀 만들기’에 나선 조선 사림 ┃ 임란 후 ‘열녀전’에 꽂힌 양반들┃ 안희정과 박원순의 차이는? ┃ 정치인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성역화 ┃ 미네르바와 김지하에게 죽음을 권한 세력 ┃ 서원과 향약으로 지방 권력 장악 ┃ 과전법 대신 유향소 챙긴 사림 ┃ 유향소 통해 향리 집단을 지배 ┃ 현대판 유향소를 추진하는 이유 ┃ 혈세에 빨대 꽂는 세력은 누구인가? ┃ 서원을 통해 중앙 정계를 좌우

4장 군자와 소인, 사림의 당동벌이
‘당동벌이’의 사림 정치 ┃ 자신은 ‘군자당’, 반대파는 ‘소인당’ ┃ 사림의 부활은 연산군의 ‘유산’ ┃ ‘박근혜 탄핵’과 586 세력의 부상 ┃ “군자와 소인은 함께하기 어렵다” ┃ 군자와 소인의 논쟁이 끼친 악영향 ┃ 남이 하면 ‘적폐’, 자기가 하면 ‘적법’ ┃ 가덕도 신공항의 내로남불 정책 ┃ 군자가 정치하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

5장 이상주의자 조광조의 왕도
원·명 교체기와 고려 말의 혼란 ┃ 원나라에서 들어온 성리학 ┃ 조선 전기 집권층은 문무의 균형 ┃ 여진족 속고내를 놓고 벌어진 내분 ┃ 연산군이 ‘연은분리법’으로 은 생산 지시 ┃ 중종반정으로 막힌 은 생산 ┃ 세계 2위가 된 일본의 은 생산량 ┃ 해외 자원 개발에도 적폐 딱지 ┃ 명분 앞세운 탈원전 정책의 후유증

6장 무본억말 조선의 망국
안빈낙도를 노래한 양반의 위선 ┃ 사대부는 도덕, 권력에 부까지 장악 ┃ 나라가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왜 가난할까 ┃ “백성이 상공업에 종사하면 간사해진다” ┃상업을 무시하고 농업만 바라본 사림 ┃ 국법으로 금지된 민간 무역 ┃ 중국에 팔 물건이 사신의 수레에 가득 ┃ 사라능단에 집착한 조선의 지배층 ┃ 조선이 망하지 않고 500년을 버틴 이유 ┃ 절대적 빈곤이 초래한 체념과 무기력 ┃ 도성 안의 집 매매와 전세를 모두 금지 ┃ 매매를 막아도 급등한 한양 집값 ┃ ‘인 서울’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약용 ┃ 18세기 한양의 인구는 20만 명 정도



7장 사림의 반청과 586의 반일
2차례 호란과 대기근을 겪은 17세기 ┃ ‘뜨거운 감자’ 명나라 모문룡 딜레마 ┃“중국에 죄 짓고, 백성들 원한을 샀노라” ┃ 명나라의 패배를 예상한 광해군 ┃ 후금에 대해 무시와 낙관론으로 일관 ┃ ‘부자 관계’가 된 명나라와 조선 ┃ 병자호란 전야 ① - 인조의 분노 ┃ 병자호란 전야 ② - 홍타이지의 격분 ┃ 10만 대군을 이끌고 나타난 홍타이지 ┃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의 대립 ┃ ‘간신’ 최명길과 ‘충신’ 김상헌 ┃ ‘조선’의 망국보다 중요했던 ‘중화’의 보존 ┃ 송시열의 북벌과 586의 반일 ┃ 국제 관계를 국내 정치용으로 악용

에필로그 도덕을 외친 사림은 특권을 챙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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