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시, 인터뷰로 만나는 제주4.3 희생자의 삶
기억의 시침을 70여 년 전 그날로 돌려놓는 사물들
민간인 희생자 3만여 명, 소리 없이 묻혀진 죽음과 비극. 올해로 73주년을 맞은 제주4.3의 희생자 유품을 사진과 시, 인터뷰로 기록한 책 『기억의 목소리』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제주4.3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고현주 사진작가가 유품 사진을 찍고, 허은실 시인이 인터뷰를 기록하고 시를 썼다. 유족들이 간직하고 있는 4.3 관련 유품 22점과 수장고에 보관된 신원불명 희생자의 유품 5점까지, 총 27점의 사물을 중심으로 만나는 제주4.3의 이야기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희생자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유가족들이 간직해온 소소한 사물을 통해 4.3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되짚는다는 것이다. 쌀 포대로 안감을 댄 저고리, 사후 영혼결혼식을 치른 젊은 남녀의 영정 사진, 토벌대를 피해 산에서 지낼 때 밥해먹은 그릇, ‘한국의 쉰들러’라고 불렸던 아버지의 성경책…… 70여 년 전 당시 제주 곳곳에서 말없이 참혹한 현장을 지켜봤던 사물들이다. 『기억의 목소리』에서는 수십 년 세월의 풍파를 거쳐 보존된 유품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4.3 희생자의 일상을 조명하며 아픈 역사와 사람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고현주 작가는 2018년부터 제주4.3 관련 유품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역사라는 이름 아래 왜곡되거나 소외되었던 개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온전히 애도받지 못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주4.3을 ‘사물’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유족의 보따리 속에, 궤 속에 오랜 세월 보존되어 있던 사물들의 서사를 하나씩 마주하며 카메라로 담아냈다.
2018년 제주로 이주한 허은실 시인이 이 작업에 함께했다. 때로는 남겨진 사물과 사람의 눈으로, 때로는 떠나간 영령의 마음으로 쓴 시는 70여 년 전 제주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간다.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시는 그 시절을 살았던 구체적인 존재를 한 명 한 명 호명한다. 그들이 생전 했던 일, 살아서 맺었던 애틋한 관계, 일상에서 사용했던 사물은 지극히 평범했기에 이 평범함은 더 큰 슬픔으로 증폭되어 전해온다. “숟가락을 놓는 것”은 “당신을 눕히는 일”이었고(「녹슨 한술」 중에서), “밤새 미싱 돌아가는 소리”에 “아들은 키가 자랐다”(「미싱」 중에서). 그의 시 속에서 사물과 인간이 맺는 소박하고 내밀한 관계가 4.3이라는 아픈 역사와 맞물려 더 크게 부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