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종사하는 터전이면서도 더러는 저널리즘의 극성에 혹하는 편이다. 극성도 가지가지지만 언어의 극성이 빈번한 당혹을 몰아오는 편이다. 내야수가 그렇다면 구장의 관객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어눌(語訥)한 자에겐 직설(直說)보다 나은 화법도 없을 것 같다. 얘기를 질러 가자.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드디어 여인의 치맛자락에 깔리기 시작했다.’ 물론 일본 여성 등반대의 에베레스트 산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비유법인 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치맛자락에 깔렸다면 영봉(靈峯)에겐 너무나 미안하다. 비단 치맛자락을 비하(卑下)해서가 아니다. 바짓자락에 깔렸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영봉은 바지건 치마건 그저 아늑히 안아들여 주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