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철 그릇 바꾸이소,”
아저씨의 쩌렁쩌렁한 음성과 함께, 그릇과 양은 냄비 그리고 솥을 가득 실은 손수레가 마술처럼 스르륵 들어온다.… 아저씨는 ‘백~철’ 할 때마다 백에다 힘을 주며 운율을 넣고 사내아이들이 같은 말을 외치면서 손수레 뒤를 줄지어 따라다닌다.… -「골목길을 울리는 소리」
우리는 그 골목길에서 함께 숨바꼭질하고, 고무줄놀이하며 마음껏 뛰어놀았다. 지금도 마음에 선명하게 저장된 우리 모두의 그 골목길로 다시 함께 가보자며 이끄는 박금우 작가의 정다운 수필집 『봉산동 골목길』.
대구에서 태어나 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광주에서 과학 교사로 교직 생활을 하는 박금우 작가가 이름도 정겨운 고향 ‘봉산동(대구 중구 대봉로 ○○길)’에서의 1970년대 전후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꺼내,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로 옮겨 담았다.
지금도 보고 싶은 사람들, 부모님, 친구들, 숙이 엄마, 명주 할매, 셋방 언니, 재일 교포 할아버지… 작가가 들려주는 그 골목길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물겨우면서도 웃음이 난다.
“와 나는 라면 끓일 끼다. 너거들은 라면 묵어봤나.”
골목이 떠나가라 질러대는 소리를 듣고 동네 아이들 몇 명이 강규네 방 앞으로 모였다. … 연탄 화덕에 냄비를 올려놓으면서 강규는 몹시 흥분하였다. 우리가 물이 많다고 그렇게 말리는데도 덜어내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잠시 후 물이 출렁거리는 라면 냄비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았다. -「초가집 강규」
다들 형편은 어금버금 고만고만했다. 그래도 그 골목길 사람들에게 넘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작가가 되살려 보여주는 그것은 인정人情이라는 사람의 도리이다.
윤기 자르르 흐르던 면 위에 곱게 채 썬 오이를 올린 짜장면과 노란 단무지!… 그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 처음으로 짜장면을 맛보았다고 했다. 까만 짜장면과 노란 단무지의 색 조화가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고, 맛있는 것을 먹는데 왜 울컥했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되돌아왔다.
“글쎄…… 말로는 설명이 잘 안 되네.” -「청도반점」
…소풍 장소에는 넝마주이라 불리는 소년들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기보다 원래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점심시간 전에 삶은 달걀, 밤과 땅콩 찐 것, 김밥, 과자 등을 학년별로 추렴하여 그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친구 경숙이가 부채과자에 파란색이 붙은 것을 곰팡이로 착각하고 봉지째로 산 아래로 굴렸다. 그걸 넝마주이 오빠가 냉큼 집어갔다. 그들은 음식을 다 먹고 오락회까지 구경한 다음 떠났다. -「소풍 가는 날」
어찌 되었든 그 골목의 아이들은 모두 바르고 씩씩하게 자랐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빵개이(소꿉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오케바닥(돌차기)’… 등 무궁무진한 놀이에다, ‘점방’이나 길거리에서 파는 ‘아이스께끼’, ‘하드’, ‘포또(달고나)’ ‘아폴로’ 같은 소박한 주전부리밖에 못 먹을지언정 그 골목의 따뜻하고 넓은 마음 씀씀이를 닮아갔기 때문이다.
큰 대문집 앞 전봇대에 하루가 멀다고 동네 아이들이 모였다.…한 걸음씩 전봇대로 다가가고 놀이가 절정에 이를 즈음, 이집 저집 대문이 열리고 아이들을 찾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 무로 온나.”
아쉬운 마음에
“쪼매만 더 놀다 가께.”
라고 외칠라치면 엄마들의 최후통첩이 날아들었다.
“밥상 치울라 칸다. 퍼뜩 온나.”
“금우야! 저녁 먹어야지.”
나를 부르시던 어머니의 음성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행복의 조건은 대단한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일까 싶다, 어린 시절에는 덕용라면 한 봉지로도 만족하고 기뻐하였다. 지금은 라면을 상자째로 살 수 있는데 이만하면 부자가 아니겠는가.”라는 작가의 글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시절 그 골목길의 전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던 사람살이의 참모습임을 이야기하는 책, 『봉산동 골목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