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불안과 공존하는 치열하고 자세한 감수성
환자가 아닌 화자로서 거식증을 재발견하다
“거식증의 회복re-covery을 넘어 발견dis-covery으로”_정희진
“거부와 결핍에 관한 용감하고도 놀라운 기록”_최지은
드러난 갈비뼈와 가느다란 손목, 푹 패인 눈두덩과 튀어나온 광대뼈. 거식증 환자는 앙상한 해골 같은 여자의 이미지로 간편하게 대표되어왔다. 여기에는 환자를 미성숙하고 한심한 여자들, 갱생이 필요한 중독자들로 규정하는 힘이 있다. 이때 거식증은 비정상적인 것, 금기시해야 하는 것, 어서 빠져나와야 하는 구렁텅이 같은 것 이상으로는 사유되지 못한다. 환자를 환자로만 규정짓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자’가 어떤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지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삼키기 연습』은 20년가량 거식증을 겪어온 저자가 ‘환자’가 아니라 ‘화자’로서 써낸 수기다. 소설 같기도 일기 같기도 한 이 책에 회복과 치유의 감동적인 서사는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난한 싸움, 거식증과 저자가 함께 만들어낸 위태로운 삶이 있을 뿐이다.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있어, 거식증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내야만 할 깊고 본질적인 진실, 좀더 많은 지식으로 번역해내야만 할 경험이다. 무엇 때문에 거식증이 찾아왔는지, 어떻게 나을 수 있을 것인지보다, 다만 ‘이게 무엇인지’를 저자는 오랜 시간 공들여 탐구하고 기록했다. 여기에 정신 질환을 이야기하는 새롭고 중요한 방법 하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