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은 말레이인 회교도를 섬기기 위해 21년을 보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입국하기 일 년 전부터 매달 혹은 한 주에 한 번씩 일상의 삶 속에서 일어난 일과 그 의미를 반추하는 기도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동역자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기 도 했지만, 일차적으로는 저희 자신들의 영적 생존과 성숙을 위한 성찰의 기록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주변에서 발생한 일 이나 친구들과 만나 나눈 대화를 기록하면서 그 의미를 헤아리기 도 했지만 국가적, 지역적 혹은 세계적인 의미를 띤 사건과 그 의미를 글로 옮기며 묵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록과 성찰 과정이 없었다면 그 ‘남방 사막’ 같은 곳에서 그렇게 장기간 동안 사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국내 사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주로 말레이시아에서 발행되는 영어 일간지와 말레이어 일간지 및 주간지를 참조하였고, 국외 사정에 대해서는 주로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라는 주간 신문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처음 입국할 때만 하더라도 친정부적인 공식 언론 매체가 국내 여론을 거의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매체들을 통해서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을 뿐, 그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다른 정보와 시각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이코노미스트가 큰 도움이 되었고 대학 도서관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 서적과 논문 덕도 많이 보았습니다.
당시에 저희 편지가 정치적인 측면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염려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기도 편지와 정치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상 정치적인 측면뿐 아니라 가능한 한 역사, 경제, 사회, 교육 및 문화 전반을 다루기 위해 저희가 의도적으로 애쓰고 있던 것을 그분들은 잘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희가 그렇게 시도한 것은 회교도 혹은 말레이인 회교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그들의 역사를 알지 못했다면 말레이인들이 자기 신원(身元)을 술탄, 더 나아가서는 회교라는 종교와 그토록 긴밀하게 연결 짓고 있다는 점을 놓쳤을 것입니다. 그들의 정치를 몰랐다면 똑같은 회교 정당 간에 왜 그토록 반감 어린 관계가 지속되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경제적인 처지를 읽지 못했다면 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을 그토록 홀대하는지 납득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무릇 선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지상 명령의 맥락 하에서 진행되는 사역이라고 믿습니다. 선교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 이해하는 게 긴요하고 그들의 가장 깊은 필요가 무엇인지 깨닫는 게 절실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인 사람들을 올바로 대우하고 사랑하는 첫 단계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선 그들의 신체적, 지적, 정서적 및 영적인 측면 모두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들에 대한 이런 전인적인 이해는 저희와 그들 간에 보다 깊고 친밀한 관계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상호 신뢰와 존경을 근거로 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시간이 갈수록 자라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깊이 이해해주는 사람만을 깊이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저희가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알기 원하고 믿기 원한다면 복음을 나누어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복음을 믿지 않아도 그들을 사랑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해와 비를 이 세상 모든 이에게 골고루 내려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온전한 사랑을 저희에게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이미 출간된 “선교의 길을 묻는 그대에게”의 후속편이기도 합니다. 그 책 속에서 다루지 못했던 회교권 선교의 이모저모를 그 책과 거의 같은 편지 형태 그대로 편집해두었기 때문입니다(2부의 “말레이시아 개관”만 제외). 모쪼록 회교권과 회교권 선교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회교와 회교도들의 다양한 실상을 개괄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그분들이 각 영역에 대해 보다 진전된 공부를 해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 마련될 수 있다면 이 책의 목적을 이루는 셈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