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권>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책 속 조연에게 일방적인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근데…… 그게 좀 과했나? 책 속에 들어올 정도로?
트럭에 치였다가 깨어났더니 웬 모르는 남자가 옆에 누워 있다.
그려 놓은 것처럼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와 쭉 뻗은 콧대와 커다란 두 눈.
금을 뿌린 실처럼 매끄러워 보이는 황금빛 머리카락.
설마. 소설 <킹메이커> 속 내 최애 카일 드 빌테온?
“……카일?”
“알면서 왜 묻는 거지.”
너무 잘생겼어, 미친 거 아니야? 귀여워……. 내 작고 귀여운 노란 아기 고양이…….
너 진짜 한번 내가 뜨겁게 사랑한다.
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소비자 만족도 평가 대만족입니다.
후기 200자 꽉꽉 채워서 찬사를 보냅니다.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미안, 아까 나갈 때 엉덩이 봤어요. 카일 엉덩이 짱 예뻐.’
“엉덩이를 왜 봐!”
……아니 이렇게까지 마음을 전할 생각은 없었는데요.
뭐, 괜찮아! 나 김금자, ‘조세핀’이 되어서 카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남자면 몰라도, 글을 모르는 조세핀에게는 시킬 일이 없어요.”
예?
그럼…… 남자가 되어 주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조. 오늘부터 남자입니다.
<3, 4권>
최애캐를 향한 앙큼한 흑심을 안고
오늘도 김금자는 고군분투합니다.?
‘란티모스 공국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대.
카일 전하가 지휘권을 갖고 총사령관으로 나가신다는데.’
책에서 읽었던 장면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그럼 카일이 운명대로 왼팔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죽을 수도 있다는 거고.
그건 안 되지. 누구 맘대로.
운명을 거스르지 마, 조. 엑스트라로 남아 있어.
그편이 오래 살 수 있단다. 이미 정해진 일들을 바꾸려고 하지 마.
어이, 삼신 언니.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게요.
미래를 바꿀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내가 죽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감히 누가 누굴 죽여. 그런 거 겁낼 거였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어.
“운명 새끼 건방지기 짝이 없네.”
설령 죽는다고 해도, 그게 카일이 살아 있는 오늘은 아니야.
“……내가 기어코 네 손에 피를 묻혔구나.”
푸른 바다를 닮은 눈망울이 아래로 굴러떨어질 듯 일렁거렸다.
“내 걱정은 말아요. 나도 당신이 죽는 걸 지켜볼 순 없었으니까.”
이 전쟁에서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은 살릴 거야.
그러기로 마음먹었거든, 내가.
<5, 6권>
“……별은 아무 쓸모가 없지 않나.
태양이 될 수도 없고, 태양과 같은 시간에 존재해서도 안 되고…….”
하늘을 바라보며 쓰게 웃는 카일의 얼굴이 외로워 보였다.
그를 고통 속에서 외로이 홀로 둘 수 없었다.
‘네가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죽이겠다.’
광기 서린 황제의 붉은 눈이 번뜩이고,
반역자로 몰린 나는 감옥에 갇혀 버렸다.
“……다들 준비해.”
“뭘 말입니까?”
“이 폭동을 진짜 반란으로 만들 거니까.”
진군하는 검은 군사들의 뒤로 성난 백성들의 행렬이 길게 잇따랐다.
카일. 무슨 일이 있어도 다치지 않게, 슬프지 않게, 행복하게 해 줄게요.
그리고 이왕이면 나랑 사랑해.
“내 미친 망아지.”
“……애칭 좀 바꾸면 안 돼요?”
“내 미친 야생마.”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요.”
“사랑해.”
“……나도요. 내가 더요. 항상 내가 더 많이요.”
카일의 머리를 끌어안고 쓰러지며 나는 속삭이듯 대답했다.
사랑해요. ……근데 끝까지 정상적인 애칭으론 안 불러 주네.